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산다. 아니 의식주(衣食住)라는 말로 볼 때 옷(衣)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밥은 한 끼 굶은 채 외출할 수 있지만 옷을 벗고는 밖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 것만으로 인간이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육신 생명 못지 않게 정신 생명도 중요하다. 그래서 ‘人·人·人·人’의 해석으로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 노릇 해야 사람이지’란 게 있다. 사람 노릇이 무엇이냐? ‘사색하는 행동인, 행동하는 사색인’을 주장한 벨그송의 말을 빌리면 사색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어야 모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사색이라면 독서와 명상이 있어야 되고 독서에는 인문학, 즉 詩·書·畵를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문화인과 교양인이 되려면 수필을 읽고 시를 외우고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신록이 자리를 잡아가는 계절에 시 몇편을 감상해보자.
① “비가 내린다. 메마른 산과 들/향긋만 꽃내음으로 적시며/맺혔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빗방울을 털면서 춘풍이 일렁인다/어쩌나 어쩌나 저것좀 봐/어여쁘게 피어나던 꽃잎, 떨어지겠네/꽃샘바람아 저 어여쁜 꽃잎 떨어져 누우면/우리들의 마음은 다시 허전함과 슬픔에 잠겨버린다/끝없이 내려다오 4월의 봄비야/내려서 메마른 산과 들 끝없이 적셔다오/4월의 봄비야”-이강철 ‘어느 4월에 내린 비’
② “잔인한 잔치 시작되었네. 처소 곳곳에/퉁퉁 불어있던 몸동아리 터져나오네/병아리가 앞에서 깨어나오듯/하늘 향해 천지를 개벽시키네/날카로운 칼바람, 견디어 온 환희의 기쁨 숨어있었네”-윤용기 ‘4월’
③ “눈이 온다 4월에도/교사 뒤뜰 매화나무 한 그루가/열심히 꽃을 피워내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눈을 맞는다/엉거주춤 담벼락에 오줌 누다 들킨 녀석처럼/매실주 마실 생각하다가 나도 찬 눈을 맞는다.”-안도현 ‘4월에 내리는 눈’
④ “축축해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떨구렵니다/새벽마다 출렁대는 그리움 하나, 연둣빛 새잎으로, 돋아나라고, 여린 보라꽃으로 피어나라고/양지쪽으로 가슴을 열어/떡잎 하나 곱게 가꾸렵니다.”-목필균 ‘4월에는’
⑤ “사랑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올한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품이 넓어지는 스웨터/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여전히 별이 있는 한 바람도/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꿈을 쪼개 새빛을 짜는 실타래/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별무리도 살아난 눈망울 동구 밖 길 밝혀준다.”-전숙영 ‘할머니와 4월’
⑥ “4월이 오면/옛 생각에 어지럽다/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연분홍 살구꽃은/앞산 고갯길을 밝히고//나물캐는 처녀들/분홍치마 휘날리면/마을 숫총각들 가슴은/온종일 애가 끓고/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뭉게구름은 졸고/동심은 막연히 설레고//반백 긴 세월에도/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앞마당에 핀 진달래/그때처럼 붉다.”-박인걸 ‘4월’
⑦ “꽃이 울면 하늘도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꽃이 아프면 꽃을 품고 있는 흙도 아프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맑고 착한 바람에, 고운 향기 실어 보내는 하늘이 품은 사랑, 그대에게 띄우며/하늘이 울면, 꽃이 따라 울고/하늘이 웃으면 꽃도 함께 웃는 봄날/그대의 눈물 속에 내가 있고/내 웃음 속에 그대가 있음을 사랑합니다.”-오순화 ‘4월의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