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벽정의 현판 ‘금벽정(錦壁亭)’과 ‘호우제일강산(湖右第一江山)’. 충청남도역사박물관 소장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 금강변 한 자락을 뚝 잘라 기암절벽이 병풍을 친 ‘창벽(蒼壁)’이 있고, 그 물 건너에 강기슭에 ‘금벽정(錦壁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윤선거, 윤순거, 윤증, 송시열 등 당대의 걸출한 명현들이 앞다투어 절경을 노래하고,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 사송정(四松亭), 독락정(獨樂亭)과 함께 금강의 대표적인 정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한때의 영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정자는 19세기 말에 헐려 사라졌다. 이후 새로 지었으나 여러 차례 인근으로 자리를 옮기다가 현재는 도로 공사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錦壁亭’이라는 이름자와 금벽정의 절경을 일갈한 ‘湖右第一江山’ 현판이 남은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생겨난 것은 언젠가는 소멸되기 마련이다. 사람들 기억에서도. 서원이나 향교, 사찰이나 정자 등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돌과 나무로 견고하게 지어 영원할 듯 당당하던 위상과 한때의 명성도 세월을 못 이기기는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덩그러니 터만 남거나, 논밭이 되거나 도로가 나거나 다른 건물이 들어서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한 풍경이 된다.

금벽정처럼 사라진 누정이나 서원, 향교나 사찰의 현판을 보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이름은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이름을 새긴 현판은 그 주인인 건물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누정은 사라져도 현판을 남긴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끝으로, 금벽정의 경치를 노래한 가사 한 수를 소개한다. 이 가사는 논산에 살던 은진 송씨 부인이 시숙(媤叔)인 공주판관 권영규(權永圭)를 방문하고 쓴 규방가사집 금행일기(錦行日記)(1845)에 수록되어 있다.

녹수 장강에 어부선이 오락가락
채련곡 어부사를 풍류소리가 화답하네
대동강 부벽루를 여기와 비교하면 어떠한고
쌍계사 지척이요, 창벽 앞 금벽정이
십리안팎 된다하나 여편내의 이 구경도
꿈인가 의심하니 이 밖을 더 바랄까

금벽정에 기대어 녹수장강에 띄운 어부선을 볼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금벽정의 복원을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장을연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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