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역사는 크게 대전역 존재 그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로가 교통의 중심이었을 땐 논산-공주-천안이 충청도의 중심축이었지만 일제에 의해 경성(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경부선)가 생기면서 그 축에 속한 대전이 급부상한다. 자연스럽게 고속도로 역시 대전을 거치도록 설계됐고 대전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됐다. 호남선·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는 모두 대전에서 분기해 영호남으로 뻗어나간다. 우리나라 철도산업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본사가 나란히 대전역 옆에 우뚝 솟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전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 1949년 시가 됐고 이후 북서쪽으로 한껏 시세를 확장해 유성과 진잠, 회덕까지 섭렵하면서 1989년 직할시(광역시)로 승격했다. 대전에 있어 2019년은 시 출범 70주년, 광역시 승격 3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3구간] 머들령길

머들령 고갯길, 
삶의 애환만 남았구나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만인산 휴게소 스카이로드와 숲속 탐방로.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워밍업.

 

태봉재 그리고 정기봉

대전은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지형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차령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줄기에 안겨 있다. 북서쪽으론 계룡산을 위시한 차령산맥 줄기로, 동남쪽은 식장산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소백산맥 산줄기에 막혀 있다. 대전이 둘레산길을 품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전둘레산길 3구간은 만인산휴게소-태조태실-정기봉-골냄이고개-머들령-국사봉-닭재-삼괴동 덕산마을로 이어진다. 공식적으로 12.5㎞, 7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만인산휴양림·휴게소에서 천천히 숲속탐방로를 걸으며 20분가량 워밍업을 하고 태조태실에서 정기봉으로 향한다.

만인산은 조선 태조 태실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태봉산으로 불렸다. 태조 태실은 금산 추부에서 대전 하소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위치하는데 그래서 이 고갯길은 태봉재(고개)로 불렸다. 태봉재 아래로 금산과 대전을 잇는 추부터널이 뚫려 있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터널은 1986년에 완공된 것이고 그 전엔 1953년 완공된 터널을 이용했다. 옛 추부터널은 만인산휴게소 바로 옆에 있다. 현재 대전 동구는 폐쇄된 이 터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 중이다. 터널이 바뀌면서 이 터널을 지나는 17번 국도(전남 여수~경기 용인) 역시 선형이 바뀌었는데 2006년 또 달라졌다. 대전 동구 삼괴동에서 금산 추부면 추정리까지 10.2㎞ 연장의 4차선 도로가 신설되면서 기존 17번 노선이 바뀌었다. 도로 신설로 해당 구간 연장이 3.2㎞ 줄었고 운행시간 역시 3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됐다.

5월의 향기, 아까시나무 꽃향기를 음미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3구간에선 전체적으로 세 번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데 첫 고비가 바로 정기봉에 오르는 길이다. 정기봉의 높이는 580m로 대전의 최고봉인 식장산(598m) 다음으로 높다. 태조태실에서 정기봉까지 약 1.5㎞. 등산로가 비교적 가파르게 전개되는 만큼 50분 정도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 정기봉 정상엔 봉화대가 복원돼 있는데 이 봉화대는 한성(서울)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 영남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정기봉 봉화터. 한성(서울)에서 보내온 신호를 받아 영남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서대산을 바라보며 하산한다.

 

걸어온 길과 걸어야 할 길

대전과 금산의 경계를 따라 걷는 길, 정기봉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진 서대산의 웅장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하산한다. 다시 500m급 봉우리를 넘어서면 골냄이고개(태조태실에서 약 4㎞)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금산 장산저수지(하늘물빛정원)에서 대전 상소동 골냄이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골냄이고개에서 두 번째 고비를 맞는다. 1㎞, 약 40분간 오르막을 탄다. 숨이 ‘턱’ 막히지만 3구간에서 가장 좋은 조망을 만날 수 있다.

대전둘레산길 원정을 시작한 보문산과 다음에 가야할 식장산, 저 멀리 계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의 17번 국도와 지금의 17번 국도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예전의 17번 국도는 금산 추부 마전리에서 추부터널을 통과해 대전 상소동으로 진입했지만 현재의 17번 국도는 대전~통영 고속도로와 나란히 내달리면서 추부 요광리에서 대전 산내로 곧장 진입한다. 역시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고속도로는 마달터널, 국도는 금산터널을 지난다.

도로가 없던 시절, 금산 목소리에선 먹티재로, 마전리에선 태봉재로, 요광리에선 머들령을 넘어야 대전에 이를 수 있었는데 만인산과 안산 사이 먹티재(대전둘레산길 2구간)는 고갯길 자체가 도로가 됐고 태봉재와 머들령은 그 아래로 터널이 뚫려 도로가 났다. 오랜 세월 삶의 애환이 담긴 고갯길, 그 길로 이제는 차가 다닌다.

전망 좋은 곳에서 허기를 달래며 잠시 든 엉뚱한 생각 하나.
‘과연 한국의 배달 문화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이 전망 좋은 곳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해? 드론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4차산업혁명특별시, 대전이라면 한 번 시도해 볼 만 한 듯.’

 

동구 삼괴동과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사이에 있는 고개. 마달산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머들령'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고개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전 대표 시인 정훈의 시 '머들령' . 이 시 한편으로 머들령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더듬어 볼 수 있다.
3구간의 종점이자 4구간 출발점인 닭재.

 

 ‘머들령 시인’ 정훈을 만나다

상상력을 한껏 부풀리며 재충전하고 다시 길을 잡는다. 잠시 내리막을 탔다가 한달음에 다시 오르막을 타면 542m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아름다운 산의 도시 금산답게 산줄기의 파도가 일렁인다. 주변 한 번 둘러보고 다시 긴 내리막의 끝, 금산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또 다른 고갯길, 머들령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시인 정훈(1911∼1992)은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머들령 쪽바위에 기대 일제치하 민족의 한을 이렇게 읊었다.

요강원을 지나 / 머들령 /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내리고 / 등짐장사 쉬어 넘고 / 도적이 목 지키던 곳 / 분홍 두루막에 남빛 쫄띠 두르고 /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 뻐꾸기 자꾸 울던 날 / 감장 개명화에 / 발이 부르트고 / 파랑 갑사댕기 / 손에 감고 울었더니 / 흘러간 서른 해 /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머들령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더듬어 과거의 삶을 유추해 보면서 3구간의 종점을 향해 길을 잡는다. 이 구간의 마지막 고비, 명지봉(404m) 넘어 국사봉(502m)에 오르는 길인데 여기서부턴 대전과 옥천의 경계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 발길은 천근만근이지만 이내 정상에 오르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4구간으로 이어지는 닭재까진 긴 내리막이다. 푯말을 따라 대전 동구 삼괴동 덕산마을로 약 1㎞ 더 내려가 3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편집=장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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