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한담] 계면조 평거 ‘반 넘어 늙었으니…’
  • 금강일보
  • 승인 2019.05.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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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명예교수
 

 가곡은 시조·가사와 함께 선비층에 의해 향유된 노래다. 이를 정가라고 하여 판소리, 잡가, 민요 등 서민층에 의해 불렸던 속가와는 구별된다.

가곡은 시조나 가사에 비해 세련된 예술성을 지닌 노래로 창과 반주가 조화를 이루는 격조 높은 음악이다. 시조나 가사는 장고 반주로도 가능하지만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장고와 같은 관현악 반주 악기가 반드시 따른다. 단소와 양금은 포함되기도 하고 포함되지 않기도 한다.

가곡에는 우조와 계면조가 있는데 우조는 웅장하고 장엄하며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계면조는 애처롭고 처량하며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서양 음악의 장조와 단조에 대비될 수 있다.

<초장>반 넘어 늙었으니
<2장>다시 젊든 못허여도
<3장>이후란 늙지 말고 매양 이만 허엿과저
<4장>백발이
<5장>제 짐작허여 더디 늙게 허여라

남창 가곡 계면조 평거로 부르는 이명한의 탄로가다.
인생 백 년을 반이 넘게 늙었으니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 해도 이제부터나마 더 늙지 말고 언제나 이 정도였으면 좋겠구나. 백발아! 네가 잘 요량을 해서 더디 늙게 하려무나.

평거는 ‘막 드는 자닌 한 잎’이라 하여 19세기 후반 이삭대엽에서 파생된 곡으로 선율 대부분이 이삭대엽과 같다. 평거는 초장의 처음을 높거나 낮지 않은 중간 정도의 음역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조와 계면조가 있고, 남창과 여창 다 있다. 중거와 함께 가곡 한바탕 중에서 제일 늦게 만들어졌다.

여창 가곡 계면조 평거는 모두 6곡인데 초장의 처음 노랫말이 두 자로 시작되는 ‘두자 머리’의 곡들이다. 초장에서 처음 3박을 생략하고 제4박부터 노래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계면조 평거 ‘초강 어부들아’이다.

<초장>초강 어부들아
<2장>고기 낚아 삶지 마라
<3장>굴삼려(屈三閭) 충혼이 어복리(漁腹裡)에 들었느니
<4장>아무리
<5장>정확(鼎鑊)에 삶은들 변할 줄이 있으랴

초강 어부들에게 고기를 잡아 삶지 말라고 했다. 뜬금없는 명령이다. 굴원이 초나라 강에 투신했으니 그의 충혼이 고기 뱃속에 들어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유를 댔다. 아무리 솥에 고기를 삶아낸들 충혼이야 변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충혼의 대명사, 굴원 고사를 들어 자신의 충성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명한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라 하여 1643년 이경여·신익성 등과 함께 심양에 잡혀가 억류되었다. 이듬해 소현세자와 함께 돌아왔으며 1645년에는 명나라와 밀통하는 외교문서를 썼다 하여 청나라에 다시 잡혀갔다 풀려났다. 이명한은 자신의 충의감을 굴원 고사에 비겨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현재 전해지는 남창 가곡 계면조 평거는 ‘반 넘어…’와 ‘말이 놀라거늘…’, ‘산은 옛산…’ 등 3곡이 있고, 여창은 ‘초강 어부들아’ 외 5곡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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