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웅순의 시조한담] 남창 지름시조 ‘푸른 산중 백발옹이…’
  • 금강일보
  • 승인 2019.06.1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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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명예교수
 

<초장> 푸른 산중(山中) 백발옹(白髮翁)이 고요 독좌(獨坐) 향남봉(向南峯)이라
<중장> 바람 불어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이니 학성홍(壑成虹)이라 주걱 제금(啼禽)은 천고한(千古恨)이요 적다 정조(鼎鳥)는 일년풍(一年豊)이로다
<종장> 누구서 산이 적막(寂寞)타던고 나는 낙무궁(樂無窮)인가 (하노라)

푸른 산중에 백발의 노인이 고요히 홀로 남쪽 봉우리를 향해 앉아있더라. 바람 부니 소나무에는 거문고 소리가 들리고 안개가 이니 골짜기에는 무지개가 뜨더라. 주걱새 우는 소리는 천고의 한을 노래하고 소쩍새 우니 이 한 해 또한 풍년이 들겠구나.
누가 산이 적막하다고 하였던고? 나에게는 이곳이 즐거움이 끝이 없는 곳이라 생각하노라.
주걱새는 두견새의 사투리다. 우리말로는 접동새라고 하며 한자어로는 두우, 자규라고도 한다. 사전에는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는데, 소쩍새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로 두견새와는 그 생김새가 다르다.
작자 미상의 시조로 산속의 다양한 풍경과 소리들을 묘사해 인간 세상의 이상향을 노래하고 있다. 이상향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화자는 산속의 삶이 낙무궁이라 하나 그것은 화자가 아닌 누구나 다 꿈꾸고 있는 우리들의 이상적인 세계일 것이다.
석암제 남창 지름시조로 널리 불리고 있는 곡이다. 남창 지름시조는 초장도 높은 소리로 질러서 부르고 중장에서도 높은 소리로 질러서 부른다. 종장은 평시조 가락과 같다. 지름시조는 가곡 ‘두거’를 본받아 평시조를 변형시켜 만든 곡조다. 두거는 ‘머리를 든다’라는 뜻으로 초장 처음을 높은 소리로 질러내기 때문에 두거시조라고도 한다. 삼죽금보에는 지름시조가 소이시조라는 명칭으로 기록돼 있다.
남창 지름시조 ‘바람도 쉬어 넘고’다.

<초장>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중장>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종장> 그 넘어 임 왔다 하면 나도 한 번도 아니 쉬고 (넘어 가리).

작자 미상의 시조다.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 수진니, 송골매,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높은 봉우리, 긴 성, 영 같은 고개. 그 너머에 임이 왔다고 하면 나는 한 번도 아니 쉬고 넘어가리라.
산진이는 산에서 자란 야생매이며 수진이는 사람의 손으로 길들여진 매다. 해동청은 매사냥에 쓰이는 참매인 송골매를 말하며, 보라매는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인 사냥 매를 말한다. 1년에서 2년 사이를 ‘초지니’, 3년째가 되면 ‘재지니’라고 한다. ‘장성령’은 올라가 별을 딸 수 있다는 높고 높은 고개다.
장성령은 전북 정읍 사람들이 남도로 가고자 할 때 넘어야 했고, 남도 사람들이 서울로 갈 때 넘을 수밖에 없었던 험한 고개다. 노령으로도 불리며 갈재라고도 한다.
바람도, 구름도 쉬었다 가는,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쉬었다 넘는 불가능한 장성령 고개도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임에 대한 사랑이, 사랑에 대한 의지가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임에 대한 그리움을 진솔하고도 담대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이런 여유로운 풍류와 진솔한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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