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G-스토리] 아나키스트가 꿈꾼 ‘더 나은 독립운동’
  • 이준섭 기자
  • 승인 2019.07.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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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 정치교육부 기자
이준섭 정치교육부 기자

단재(丹齋) 신채호와 약산(若山) 김원봉. 일제의 패망을 짐작할 수 없던 시대, 그들의 찬란한 분투(奮鬪)가 없었다면 어쩌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2019년 오늘의 민족해방사는 낯부끄러웠을 수도 있었다. 온전하게 민족의 힘으로 광복을 쟁취할 수 없다는 좌절감, 부일(附日)과 친일(親日)이 판을 치던 변절의 현장에서 조선의 운명을 짊어진 두 사내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자주와 독립을 향한 거보(巨步)였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8일까지 전문예술단체 극단 새벽이 단재와 약산의 독립투쟁을 극화한 연극 ‘곡하고 노래하리라’를 대전 소극장 상상아트홀과 대덕문예회관 무대에 올렸다. 연극에선 2019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지역이 내놓은 걸출한 위인 신채호와 함께 무장독립투쟁 최일선에 선 의열단장 김원봉의 삶을 때론 엄중하고 비장하게, 때로는 안타까우면서 비절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3·1운동과 임정수립이라는 역사의 중대한 분기점을 지나는 시점에 선보여진 연극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역설적이게도 너무 늦은 재조명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신채호, 김원봉 두 인물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우리나라 언론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신채호도, 의열단·조선의용대를 이끌면서 무장투쟁을 주도한 김원봉도 이름에 비해 알려진 업적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지역 극단이 빠듯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줄거리, 멋드러진 연기, 훌륭한 연출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을 내놓기 위해 펼친 고군분투는 반드시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과거에 묶어둔 걸까. 임정에 참여했다가 이승만과 독립운동 노선 차이로 무장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한 신채호와 ‘천하의 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사명 아래 강도 높은 암살과 파괴로 일제에 맞선 김원봉이 만나는 접점, ‘아나키즘(Anarchism)’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소위 아나키스트라 하면 ‘체제 전복을 원하는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실력 양성, 외교 독립이라는 독립운동의 대세에 함몰돼 아나키스트 신채호와 김원봉을 색안경 끼고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바라본 결과가 목숨 걸고 일제에 맞서 싸운 그 희생을 오늘까지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한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신채호가 쓴 ‘조선혁명선언(의열단선언)’은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해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지 못하고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채호와 김원봉이 꿈꾼 조국은 결코 정부가 없는 혼란한 세상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아나키즘 역시 제국주의에 맞서 광복으로 가는 ‘더 나은 독립운동’을 위한 선택이었다. 타국에서 순국하고 해방 이후에도 60여 년을 무국적자로 남아야했던 단재 신채호, 분단이 낳은 비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언제까지 민족이 아닌 이념의 잣대로 독립운동을 기려야 하는 걸까. 2019년 우리 역사에 서린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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