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충청도 방언에 ‘마실’이라는 말이 있다. 마실은 마을을 뜻하기도 하고 이웃집에 놀러 가거나 다른 마을에 일손을 도우러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 어른들께서는 마실을 다니며 옆집에 들러 일손도 돕고 이웃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거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세상사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친분을 쌓는 교류의 장이자 안부를 확인하고 힘든 일을 돕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도 “옆집에 마실 가자”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다. 특히 겨울철 농한기에 마실을 가서 이웃과 함께 화로에 옹기종기 모여 고구마, 가래떡을 구워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또 동네에 보살핌이 필요한 어르신이 계셨는데 동네 주민들은 마실 다니면서 간간이 그 어르신 댁에 들러 음식도 드리고 안부를 물으며 말벗이 돼 드리기도 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곤 한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중구 선화동 시장에서 채소를 떼어다 행상을 하는 할머니가 다리가 부러져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다섯 평 정도의 땅을 소유하고 있어 생활보호 대상자에서도 제외됐다. 현장에 가서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듣고 현지 출장보고서를 작성한 뒤 구청과 시청을 몇 차례 오간 끝에 할머니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받게 됐다. 말단 공무원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어릴 적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던 마실과 말단 공무원 시절 겪은 현장 행정의 경험을 접목해 보고 싶었다. 마침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과 함께 행정에서 현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행복동행 동네마실’이다.

23개 동으로 구성된 서구는 대전시 인구의 3분의 1이 사는, 대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치구다. 그만큼 주민의 행정에 대한 욕구는 다양하고 복잡하며 주민을 구청으로 모셔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주민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주민들 곁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듣는 건 어떨까?’ 그래서 주민들이 살고 있는 현장 속으로 마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행복동행’은‘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손을 잡고 동행한다’라는 민선 7기 구정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행복동행 동네마실’은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마음껏, 실컷 하며 서구 주민과 함께 손잡고 구민이 행복한 구정을 펼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동네마실을 다니다 보면,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주민들은 구청에서 잘한 일이 있으면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보내주고 잘못하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건의도 한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확인하다 보면 더 좋은 해결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 전 동네마실을 통해 어렵게 사는 어르신 댁을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도배 봉사를 한 일이 있다. 깨끗하게 변한 집안을 둘러보시던 어르신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두 손을 잡고 “집이 밝고 새집이 됐다”며 연신 고마워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동네마실이 아니었다면 어르신을 만날 기회도,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릴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동네마실을 통해 주민의 생활 현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주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장맛비가 내리고 태풍이 예년처럼 올 것이다. ‘소 읽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을 듣기 전에 오늘도 이 동네 저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주민의 안전을 살필 것이다. 또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애로사항을 청취해 행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행복동행 동네마실’의 도입 취지이기 때문이다.

동네마실을 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다. 동네 현장을 찾아가는 길에 아는 분이나 주민을 만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동네로 마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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