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생명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떠나 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민간기관이 아닌 공공기관들도 위험의 외주화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효율성이라는 폭력에 쓰러져 갔다. 공공기관의 효율과 경제성 제일주의는 바로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자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리는 의료를 시장에 맡기는 것도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행위다. 2017년 기준 국내 공공의료기관 기관 수는 5.7%, 병상 수는 9.2%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인데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공공의료를 확대하는데 효율과 경제성을 따진다면 그것도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행위인 것이다.
헌법 36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되어있다. 이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건강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는 권리이기에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 실현을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늘리고, 의료보장성을 높이고, 공공의료에 투자를 확대하고, 공공의료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경제성과 효율성이 아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다행히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10월 필수의료의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공공의료기관의 절대적인 부족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최소한 전체 의료기관의 30% 정도는 되어야 종합대책도 실효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여전히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고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 대해서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경제성이라는 잣대를 통해 방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공공사업을 모두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따지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도로를 개설한다든지, 공항을 건설한다든지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은 중복투자를 막고 제한된 재정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기에 경제성을 분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칫 무분별한 공공사업이 지방재정을 악화시켜 정작 꼭 해야 하는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잘못된 판단과 투자로 엄청난 세금을 축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의료 영역까지 도로를 개설하는 것과 똑같이 경제성이란 잣대로 타당성을 검증하는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더 나아가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것은 당장은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측면으로 보면 편익이 훨씬 높다. 지난 2015년 발생한 우리나라 사상 초유의 메르스 사태가 9조 원 이상의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입혔다고 한다.
공공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여 제대로 대처만 했더라면 천문학적인 사회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공약이자 20년이 훨씬 넘은 대전시민의 숙원사업인 대전의료원 설립이 KDI의 1차 중간보고회가 있었는데 경제성이 적은 것으로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전시의회는 1차 중간보고회 결과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대전의료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설립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했다. 대전시의회의 요구안을 보면 대전의료원 설립은 대전시민의 오랜 염원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 예비타당성 조사는 경제적 비용/편익의 기준이 아닌 공공의료가 지닌 사회적 편익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 대전의료원 진료권의 범위는 대전시와 영동·옥천과 함께 물리적 거리 개념이 아닌 교통편의의 관점에서 금산·계룡·청주시 상당구와 서원구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전시의회와 대전시립병원 설립 시민운동본부의 내부토론회에서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자는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높은 것으로 발표했는데, KDI는 어떤 근거로 편익이 적은 것으로 평가했을까? 혹 무슨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KDI에 강력히 요청한다. 대전시민의 20년이 넘은 숙원인 대전의료원이 하루빨리 설립될 수 있도록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편익의 관점에서 예비타당성 검토를 하기 바란다. 샬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