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산, 우리가 몰랐던 독립영웅 '그는 누구?' 봉오동 전투 승리 이끈 영웅

 

최운산, 우리가 몰랐던 독립영웅 '그는 누구?' 봉오동 전투 승리 이끈 영웅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최운산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했다.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한 봉오동 전투 이야기가 담겼다.

1920년 10월 독립 투쟁 사상 최대 규모의 승리를 거둔 청산리 대첩. 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 산골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또 다른 역사적 전투가 있었다. 바로 '봉오동 전투'다.

당시 독립투사로 활동했던 최명길과 최풍, 최만익, 최복, 최고려, 최문무, 최빈. 전방위로 활동했던 이들은 사실 모두 '동일 인물'이었으니, 그의 진짜 이름은 '최운산'이었다.

최운산은 1885년 중국 지린성의 한 조선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된 후 중국이 토지 정리 사업을 시작하자 간도의 황무지를 헐값에 구매한 최운산은 이 땅을 조선의 앞날을 위한 터로 삼겠다고 선언, 조선인들을 위한 '신한촌'을 세웠다. 

간도 제일 거부로 거듭난 그는 독립 운동을 금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군에 들어가 무술과 총술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인을 모아 사병을 양성했다. 

이후엔 자신이 갖고 있던 대부분의 땅을 팔아 러시아, 체코군으로부터 구입한 무기를 조달했는데, 대포만 10여대, 기관총 수십 정, 수류탄 수천 개, 실탄 수만 발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던 1920년,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에 있는 일본군 순찰 소대를 습격했고, 이에 분노한 일본군이 1개 대대를 최운산의 독립기지가 있는 봉오동으로 보낸 것이다. 

봉오동은 최운산이 조직한 자위부대 뿐아니라 대한독립군 등 여러 독립 부대가 합쳐 설립된 통합 부대가 있던 곳이었다. 숫자에서 열세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모여 만든 독립부대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일본군을 상대하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뜻밖에도 독립군이 승리한 것이다. 이 전투의 승리에도 최운산의 역할이 컸다.

누구보다도 봉오동 일대를 잘 알고 있던 최운산은 일본군을 봉오동 계곡으로 유인하자고 했다. '죽음의 골짜기'라고 불릴 만큼 산세가 험했기 때문에 적은 인력으로도 일본군을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 또 신식 무기를 독립군에게 나눠준 최운산 덕분에 완전 무장한 독립군은 일본군에 격렬히 저항할 수 있었다.

이에 독립군은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됐다. 또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전사자는 157명인 반면, 우리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자 4명에 그쳤다.

이후로도 독립 운동을 열렬하게 벌인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독립을 40여 일 앞두고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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