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옆집에 나이가 든 부부가 이사를 왔다. 저녁이 돼 잠자리에 누우니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녘에도 닭 울음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여러 날 이어졌지만, 도회지에서 닭을 기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마 여름을 나면서 식구들 복달임으로 쓰려고 가져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집도 오랫동안 개를 기른 때가 있었다. 하루는 이웃 청년이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는 바람에 식구들의 귀염을 독차지하던 흰색 스피츠를 시골에 사는 친척집으로 떠나보냈다.

그때 청년의 항의에 맞대응하면서 다투거나 개 기르기를 고집했다면 이웃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손가락질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주변에 사는 분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집을 잘 지키던 귀염둥이와 이별의 슬픔을 선택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커다란 복이다. 대문을 나서면서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살기 좋은 동네가 될 것이다. 작은 먹거리라도 나누고, 집안 애경사에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면서 지내는 다정한 이웃을 두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웃끼리 반목하고 증오한다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일까.

요즈음 나라 안팎이 무척 시끄럽다. 이웃 일본이 우리한테 싸움을 걸어오면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했고, 이달 2일에는 우리나라를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대상으로 결정했다.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선포하면서 이웃이 아니라 적대국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유지되고 발전해 온 한·일경제 파트너십과 동북아 안보협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선제공격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우리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일본을 이겨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한을 풀자는 결의를 보였다. 이제 두 나라가 레일 위를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큰 어려움에 빠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운동경기에서 승자는 영광의 월계관을 쓰고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운동경기가 아닌 싸움에선 승자든 패자든 모두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우리 국민이 단결해 노노-재팬(NONO-JAPAN)으로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금지를 외치는 것처럼 일본도 맞대응하며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이 점점 격화되면 두 나라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안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이 밉고 괘씸해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들 곁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본 열도가 한반도에서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는 지정학적 여건 속에 두 나라가 놓여있다. 자자손손 이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우리들은 꾸준한 노력으로 원만한 해결점을 찾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감정적 대응은 쉽지만,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600만 명을 학살했던 독일의 만행에 대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유대인들의 교훈을 참고해 우리도 일본의 소행을 잊지 말고 그들을 능가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먼저 국민들 사이에서 순수하게 일어난 불매운동을 더욱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거나 개입해선 안 된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고, 들불처럼 번져 나가야 하겠다. 정부에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역사교육을 강화해 일본의 실상을 상세하게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부품 소재 국산화를 위한 자금력과 기술 개발을 위해 우수한 기술인력이 필요하므로 재정 지원과 인재 양성을 위한 단기-중장기적 대책을 세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대책을 추진하면서 국민과 정부가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실력을 갖춘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고, 우방들과 좋은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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