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성 사회부 기자

법원이나 경찰·검찰청, 혹은 유력(有力) 기관이나 기업을 지나다 보면 종종 일인시위를 하는 이를 목격하곤 한다. 손에 허름한 피켓을 잡거나 낡은 머리띠를 동여매고 기관의 거대한 정문 앞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대체 저 분은 무슨 사연을 지닌 것일까.
 
그럼에도 그들에게 다가가 “어떤 일로 1인 시위를 하고 계시나요?”라고 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누군가 온전히 짊어진 ‘제보’의 무게를 취재자로 감당하거나, 덜어 줄 용기를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도 든다.
 
올해 초 한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취재하며 유족이 머물고 있던 병원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죽었다는 슬픔, 여기에서 나오는 유족들의 오열과 분노. 피해자의 어머니는 사고가 발생한 회사 관계자들을 붙잡은 채 쓰러졌다. 감히 그 앞에서 무슨 말을 건네고 물을 수 있겠는가. 취재자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현장에 남는 일밖에 없었다.
 
사고 후 사흘쯤 지났을 때였다. 충혈된 눈의 사고피해자 어머니가 날 바라보더니 옆으로 와 앉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혹여 ‘왜 계속 이곳에 남아있냐’고 화를 내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잔뜩 긴장했다. 그런데 피해자의 어머니가 물은 것은 전혀 뜻밖의 물음이었다. “일인시위를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고.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위로랍시고 "많이 힘드실 거예요"라고 했다. 그 염려에 “힘든 걸 누가 모르겠나요. 무엇이라도 해야 해요”라는 피해자 어머니의 말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피해자 어머니는 그 뒤 함께 분노한 다른 피해자 가족과 단체와 뜻을 같이해 일인시위에 나서진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녀의 한마디를 통해 일인시위를 생각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떠올려 보게 됐다. 그들의 울먹임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되도록이면 일인시위에 나선 이들의 사연을 모르쇠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내용이란 것이 태반이 기사로 다루기 힘든 성질이거나, 소위 기사 ‘깜’이 안 되는 것도 적잖고, 또 때론 이러저러한 이유로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 속에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의 일인시위가 이어진다고 한다. 정의(正義)를 기치로 내건 한 지역언론사 앞에서 어떤 이가 일인시위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을 비롯, 지역 곳곳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소식이 적잖다. 냉정한 사회 속에서 그들의 견딤이 내일까지 이어질지는 알길 없지만 부디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길 바라본다. 그들의 아픈 사연을 그저 사담(私談)이나 뒷담화로 소비하지 않고 우리직업이 지닌 사명처럼, 부디 진심어린 글로 녹여낼 수 있기를.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