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심란한 마음에 뒤척이다 잘 시간을 놓친다. 한숨과 기대로 밑바닥까지 들춰내 펼쳐 보인 속사정은 태양빛에 타들어갈 흡혈귀의 살갗처럼 어둠과 그늘에 차갑게 가두어야만 한다. 늦은 밤에만 잘 써진다는 감성 편지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2019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우정사업본부 주최/10월 28일까지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접수)이 있어 편지 관련 책을 선정해 보았어요. 둘 중 한 권 선택하셔서 메시지 주세요.
하나,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읽으면서 저와 같이 살고 있는 한 아버지와 아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어요. 아버지라는 세계와 불화한 아들의 내면이 편지 형식으로 조밀조밀하게 드러나 있어요. 빨리 읽기보다는 한 줄 한 줄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학생들하고도 많이 겹쳐요. 본디 성향을 표출하지 못한 채 억눌린 영혼의 아픈 성장기로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저항하고 도전하고 깨지고 다친 영혼(질풍노도 학생)에게 전하는 편지 한 통 어떠세요?
둘, 신성림 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고흐의 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요. 별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지만 별 스스로는 제 열정으로 스스로 불타는 중이라고 해요. 마지막 한 점까지 스스로 불태우고 소멸하는 수많은 별들. 편지와 그림으로, 아름다운 고통으로 분신의 흔적을 남긴 고흐가 말합니다. ‘불타는 마음으로 쓴 편지 한 통, 누군가(묵묵히 노력하는 학생)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소.’"
네 번째 교사독서활동을 위한 책 두 권을 안내했고 선택하신 책을 스물일곱 분께 전해 드렸다. ‘편지를 꼭 써야 하나요? 공모전에 반드시 참가해야 하나요?’ 듣고 싶은 답이 있다는 불안한 눈빛으로 질문하신다. “저도 실적이 필요합니다.(간절하게 웃으며)”라고 대답할 수밖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버이날에는 내 아이에게,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에게 손편지를 쓰라 했고 아름다운 강요라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나도 써볼까’ 차오르기만 하는 말들 앞에 수신자는 막막하지만 그 사람에게 예고 없이 날아들, 소중하게 간직될 종이편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인가? ‘내 글씨 어쩌지?’ ‘어디에 보관하지?’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망설이게 할 슬픈 아날로그 감성.
익어가는 가을 열매, 한낮의 따가운 햇살만이 주역은 아니다. 가을만이 주는 새벽과 밤의 서늘함이 한몫을 한다. 햇빛에 드러나면 사라지거나 흉해질 것이라면 서늘하고 그늘진 곳, 나만 아는 곳에 두고 숙성하면 된다. 전하지 않을 편지여도 가을밤의 서늘함이 아깝다. 시간이 별로 없다. 가을은 짧고 마감일은 곧 다가올 테니까.
손글씨로 전하는 획의 조형미, 글말의 정제미, 날숨의 온기로 스며드는 고백. 매일 보는 사람에게도 못 한 말은 있는 법, ‘카프카’도 되어 보고 ‘고흐’도 되어 볼까나. 가을엔 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