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명예교수

지금 우리 시대의 명령이요 풀어야 할 화두는 개혁이다. 시대는 다른 것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일반 사람들이 대변한다. 이 때 사람들이라고 할 때 어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조직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관련 있는 자는 시대를 함께 살지만 자기 욕심이나 조직을 대변할 뿐, 순수한 맘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시대를 반영하는 소리는 언제나 일반 사람, 맨 사람들이 질러낸다. 그 소리가 때로는 모기소리처럼 가냘픈 것 같지만, 그것은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날카로운 소리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나중에는 광장의 거대한 함성으로, 그 함성이 바뀌어 횃불로 타오르기도 한다. 분노의 불길인 듯 깊은 슬픔과 연민과 철학과 종교를 가지고 있는 진리의 소리다. 그 진리의 소리는 다른 것 아니라 제 노릇하자는 뜻이다. 제 노릇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과 생각과 뜻은 때때로 순수하다. 그러나 그것에 약간의 권력과 재력과 영예와 그 무엇인가 사사로운 것이 끼면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영역을 가지게 되면 벌써 순수성을 잃기 시작한다. 그 자리라는 것은 원래 제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자리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제 본분을 잃고 선을 넘고 고개를 넘는다. 그러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폐악을 저지른다. 그러다가 그 자리를 떠나면 자기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왔던가를 깨닫게 된다.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얻는 것, 그것에서 그 자리에 있을 때도 제대로 제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개혁의 핵심방향이다.
그러나 결코 개혁은 당사자 스스로 할 수는 없다. 검찰은 검찰개혁을 스스로 할 수 없고, 국회는 국회 스스로 국회를 개혁할 수 없다. 법원과 경찰과 경제계나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 조직 안에 들어가 있는 한은 언제나 그 조직의 논리와 그 조직에 충성하는 조직원의 논리를 벗어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혁의 바람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그 안의 양심이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광장의 소리는 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분별이 있어야 한다. 동원된 광장의 소리와 자발참여의 광장의 소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동원된 광장의 소리는 불안하고 불편하고 조급하고 그악스럽다. 그러나 자발참여의 광장의 소리는 평화롭고 유쾌하고 경쾌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점점 널리 크고 견고하게 퍼진다. 시대의 순수한 소리를 나타내는가? 아니면 시대를 가장한 사사로운 욕심에 빠진 소리를 나타내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치가나 정치를 하려고 맘먹은 자의 소리는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힌 자의 소리라고 일단 치부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해야 개혁으로 가는 길을 트게 될 것이다.
지금 몇 달을 두고 일어나는 개혁의 소리와 과정을 보면서 몇 가지 드러난 것이 있다.
첫째는 사회와 개인을 도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도개혁은 사회를 도덕화하자는 주장이다. 제대로 된 것으로 가는 제도를 만들고, 그 자리에 좀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하자는 또 다른 틀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참 제대로 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석가나 공자나 예수나 노자와 같은 우리 인류의 모든 스승들은 한결같이 사회와 인간혁명을 주장하고 간절히 바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그분들이 필생의 과제로 삼았고, 인류가 지키고 따라야 할 영원한 과제로 남겨 놓았다. 이번 광장으로 나가는 인심은 바로 이 두 가지, 제도와 인간을 하나로 도덕스럽게 개혁하자고 요청하는 일이다. 참을 주장하면 참을 살고, 개혁을 주장하면 개혁의 삶을 살자는 흐름이다. 참을 주장하면서 참스럽게 살지 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허탈은 바로 그러한 길로 가자는 슬프고 아프면서 연민의 정을 가진 외침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선 제도를 도덕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끊임없이 인간혁명을 획책할 일이다. 그래서 일단 횃불이 타 올리는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검경역할재분배 등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약간의 순서를 두고 할 일이 정치개혁이다. 국회는 국회가 개혁할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 우리의 제도로서는 개혁할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회를 이용하여 개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올바른 선거법, 소수의 의견까지도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여는 선거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연동형비례제다. 그것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달려 있는 국회 스스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광장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타올라야 할 이유가 있다. 그 불길에 못 견디어 국회가 나서서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꺼지지 않게 지펴지고 살라야 한다. 그리고 나서 국회 개혁은 국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기구를 만들어 하도록 해야 하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들이 받는 세비책정, 국회의 무노동 무임금제 도입, 불체포 특권이나 발언의 면책특권을 개혁할 기구가 별도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결국 개혁이란 모든 것들이 다 제 노릇을 하자는 뜻이다. 모든 인간과 제도는 서로 독립된 듯 동시에 종속되듯이 서로 얽혀 있다. 어떤 권력도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를 용납하여서는 안 된다. 서로 얽혀 견제하고 격려하고 협조하면서 나가야 제 할 노릇을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사사로운 것에 걸리지 않은 일반 사람들, 맨 사람들이 내는 광장의 소리는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개혁은 끊임없는 삶의 과정이요 역사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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