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중심 교통 인프라…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이 보행자
장애인에게 도로·인도는 ‘지옥’…스몸비,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

 정부가 ‘국민 안전 3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교통사고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교통약자의 보행 안전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교통안전에 대한 미흡한 인식과 부실한 인프라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다.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을 차가 아닌 사람(보행자)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11월 11일은 정부가 2010년 지정한 보행자의 날이다. ‘11’은 사람의 두 다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는 보행자 안전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자는 의미로 이날을 보행자의 날로 지정했다.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동차를 중심으로 도시 교통 인프라가 구축됐고 그 부작용으로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이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편리하고 안전한 보행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 따른 것이다. ▶관련기사 3면

보행, 다시 말해 걷는 것은 인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이동의 측면에서 보행은 가장 기초적인 교통수단이라는 뜻이다. 지금이야 자전거나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와 같은 기계적 힘에 의한 빠른 교통수단이 보편화됐지만 보행은 여전히 ‘사람이 움직이는 일’의 기본이다. 그러나 속도와 이동의 편리함이 강조되다 보니 도로 교통환경은 기계적 수단을 중심으로 설계됐고 이게 당연시 됐다. 도로교통 인프라 역시 차가 중심이고 보행자는 후순위로 밀려 많은 불편을 야기했다. 횡단보도가 대표적이다. 보행환경보단 차량의 흐름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횡단보도 설치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이로 인해 보행자는 지하보도로 내몰리거나 먼 데 있는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차량 중심의 교통환경은 상당한 부작용을 수반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3781명 중 1487명(39.3%)이 보행자다. 2014년 1910명이었던 보행 사망자는 2015년 1795명, 2016년 1714명, 2017년 1675명으로 해마다 감소 추세지만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4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9.7%)과 비교해 2배나 된다. 대전의 경우 지난해 보행 사망자 수는 46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85명)의 54.1%를 차지했다. 보행 환경이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같은 열악한 인프라와 맞물려 ‘무단횡단’ 사고도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장애인의 경우 더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제장애인의 경우 훼손된 점자블록, 보행사고를 유발하는 볼라드(인도에 차량 출입을 못 하도록 세운 기둥), 횡단보도 불법 주정차 등 도로와 인도 곳곳이 암초다. 지속적으로 시설 개선이 이뤄지곤 있지만 장애인이 편리한 교통환경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알아서 피해 가라’는 운전자들의 그릇된 인식 역시 여전히 걸림돌이다.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상태에서 걷는 사람들을 일컫는 ‘스몸비’는 보행안전의 새로운 위협 요소로 떠올랐다. 차와 사람이 한 데 뒤엉키는 도로에서 스몸비는 자신의 안전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도 위협한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교통사고는 사회적 재난”이라며 “제한속도 하향과 횡단보도 증설을 비롯한 도로 시설 개선 등 특히 보행자 안전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과 함께 교통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신익규 기자 sig26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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