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재판에 해충·유충까지도 …

1494년 6월 14일 프랑스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돼지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선서를 한 여러 명의 증인에게 심문을 하였다는 자료가 남아있고, 결국 이 돼지도 잡혔지만 금방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일단 한 수도원에 가두었다고 한다. 후에 법관의 의견의 개진되었는데, 혐오스럽고 경악스러운 이런 돼지를 정의의 이름으로 교수대에 묶어서 목을 졸라 죽여야 한다고! 더군다나 어떤 땐 이런 동물들을 위하여 아주 공식적인 은사(恩赦)를 청했을 때 그대로 이루어 지기도 했다.
귀족인 퀴네의필립(Philipp der Kuhne)은 1379년 사람을 죽였기에 고발된 두 마리 돼지에게 감형증서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공식적인 증서는 인간에게 쓰는 은사(恩赦)문서의 형식과 내용에 준해서 발급되었는데, 그 결과 한 돼지는 살린 반면에 다른 돼지는 목을 쳐 죽였다고. 아마 후자의 돼지 죄질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땐 동물자체를 증인으로 세우기까지 했단다. 근데 어떻게 동물자체를? 상세한 서술이 없어 유감이다. 하지만 여기에 관계되는 박사논문들을 꼼꼼하게 찾아보면 그 이유가 분명 나올지도 모른다. 만약에 동물들의 죄목이 드러나면 앞에서 이미 한 번 언급했듯이 사형이 따랐다. 마치 인간에게 하는 것처럼, 머리를 자르거나 목을 매달거나 불에 태워 죽이거나 아니면 살아있는 채 땅에 묻었다.
그럼 판결비와 사형비는 어떠했을까? 펠레(Failais)의 한 사형집행인의 기록에서 보면, 그는 한 암퇘지의 사형집행 값을 요구했고, 장갑을 산 값까지도 청구했다. 또한 전문가와 권위자도 법정에서 진술하기 위해 때때로 소환되었는데, 이들에게도 역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런 부분은 그리 놀랍지 않다. 중세기 때에 사형집행을 하는 장면을 보면, 사형집행에 쓴 초 값, 기도 값, 사형 집행장까지의 동행비까지 다 받아 챙겼다 하니, 당시는 동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니, 인간과 같은 급으로 처리했을 것 같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름을 동물재판에 해충과 유충까지도 넣었다는 것. 이들이 말하는 해충으로는 주로 쥐, 메뚜기 등등을 언급하는데, 이런 재판은 예방적인 목적으로 고소고발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대체 무슨 예방이 되었는지, 아님 동물들이 이런 재판소식을 동료 해충들로부터 전해 듣고선 늘 조심을 하라는 건지, 당시인들은 동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 그 이유일까?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끝이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