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를 관리하는 중세인들

중세인들이 죽은 후의 영혼을 관리하는 모습에 대해 톺아본다. 기도처는 주로 수도원이었는데, 중세의 수도원은 정신적인 영역과 동시에 물질적인 역할까지도 맡았던 곳이다. 후자의 영역은 잘 알려진 대로 맥주를 만들어 팔거나 소금장사 등인데, 예를 들어 1098년에 세워진 중세의 한 찌스터지엔저 수도원의 소금사업에 대해서 쓴 연구서가 나와 있을 정도다. 이들은 이렇게 물질적인 영역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의 소금값이 금값처럼 비쌌던 시기였다 보니 수도원들이 돈벌이로 나섰던 거다.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수도원들 역할은 바로 그리스도 정신의 전파와 산 자의 영혼은 물론 사후의 하늘나라에 대한 신앙심을 북돋우고 기도해 주는 것이었다. 천국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이들은 살아 생전의 참회도 모자라 사후의 자기 영혼을 빌어달라는 유언까지 남겼는데, 주로 귀족층들과 부자들이었고, 수도원과 수도승들이 이런 역할과 과제를 도맡았다. 먼저 카롤링거 시대의 수도원끼리의 기도연합을 보고 그 다음은 개인이 남긴 유언장들을 들여다 보자.

▶수도원 기도연합은 어떻게 기도하였던가

신학자 페터 하벨 박사가 언급한 카롤링거 시대(751~987)의 수도원들을 보자. 760년 22명의 주교들, 그리고 5명의 주교들, 17명의 수도원 원장들이 프랑스의 아티그니에 모여서 종교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수도원에 소속된 동료들이 함께 기도나 시편 낭송기도를 해주는 연합을 구성하였고, 이 계약은 공식적으로 서류화하여 서명을 하였다. 주된 내용을 보면, 이들은 죽은 이들의 영혼을 필히 기억해주고, 100번의 미사 그리고 100번의 푸잘터(Psalter:성서의 시편 150편을 읽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100번)를 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웠다.

공동번역 성서의 836쪽부터 1019쪽까지가 시편인데, 이 기도를 100번이나... 엄청난 기도가 아닌가? 그 외에도 주교들과 수도원 원장들은 30번의 미사를 올리게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772년 딘골핑 수도원을 중심으로 결성한 밴드를 보면, 6명의 주교, 13명의 수도원장들이 포함되었고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서로 100번의 미사, 100번의 푸잘터를 의무적으로 행해야만 했다. 그 외에도 당시의 유사한 기도연합체가 생겼는데, 바로 8세기의 바이쎈부르크(Weissnburg)의 수도원에서다. 출처: ‘기독교 사상’ 2019년 6월호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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