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푼 까닭

고인의 혼을 구하기 위한 자선 헌금, 왜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었던가?

먼저 유언장에 자주 등장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나서 개별적인 사후세계를 챙기는 유언장을 보자.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선은 음식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옷도 속했는데, 그만큼 귀했다는 거다. 이런 자선을 하지 않을 경우엔 대개는 천국행이 막힌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보니, 가난한 자들을 일단 천국의 문지기로 생각할 정도였다는 페터 하벨 박사의 언급이다. 예를 들어 12세기 중반의 크루니 수도원에는 약 300명의 수도승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매해 약 1만 명 정도를 위한 기도와 동시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식 제공도 잊지 않았다.

수도승들은 축제일에도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고기와 와인을 제공했는가 하면, 매일 50명 1년에 약 1만 8000명 정도에게 음식을 나누었다고. 또 다른 라이헨나우(Reichenau) 수도원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형제가 죽으면서 남긴 돈으로 30일 계속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제공을 제공했다. 이처럼 당시의 가진 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천국의 계단쯤으로 여긴 것 같다.

다음의 예들은 재물을 가지고 영혼을 구제하는 방편들이다. 귀족과 왕족들은 수도원에 많은 돈을 기부하고 사후 영혼을 맡겼다. 잊지 않았던 것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언급인데, 다 사후에 지옥과 연옥에서 시달리는 기간을 줄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몇몇의 유언장을 보자.

616년 주교인 베트람(Bertram von Le Man)의 유언장에 고인의 혼을 구하기 위한 헌금이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데리고 있었던 노예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라는 언급까지도 있다. 1054년에 죽은 수녀원장이었던 테오파누(Theophanu)의 유언장이다. '그녀의 사후 30일 동안 12명의 사제가 그녀를 위한 미사를 올려달라, 거기에 대한 대가는 30 졸리디(Solidi)를 지불하라!'

가난한 이들에게는 5졸리디(Solidi)를 나누어 주고, 그 다음날 다시 2졸리디(Solidi).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장례식 날은 5졸리디를 더 주라고! 그리고 나서 연이은 4일간은 2졸리디를 나누어 주라고! 한꺼번에 다 나누어 주지 않고 이렇게 날마다 다른 액수를 주었는데, 왜 그랬는지가 상당히 궁금하다. 가난한 이들이 그녀의 장례식 주위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출처: ‘기독교 사상’ 2019년 6월호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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