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사명감을 자각할 때
  • 신성재 기자
  • 승인 2020.02.0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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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자
(1830,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루브르박물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루브르박물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년~1804년]는 계몽을 “인류의 미성숙한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추어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하고, 편견과 미망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계몽이란 무지의 베일을 거둬 진리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신문·통신·잡지·방송 등의 분야에서 취재·편집·논평 등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자는 근대(近代) 계몽의 투사(鬪士)였다. 학자마다 언론과 기자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시기를 규정하는 데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계몽의 투사로서 본연의 역할에 맞게 활동한 시기를 근대 계몽시대로 잡는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유럽의 중세 봉건주의 시대가 끝나고 장원이 붕괴되면서 도시가 커지면서 중산계급인 부르주아지가 등장했다. 이어 영국의 젠트리계급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왕과 귀족의 권위와 특권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만민의 평등을 주장하는 학설을 지지했다. 신의 계시에 대한 교회의 독점적인 권리에 대해 의문을 던진 회의론과 왕의 권위가 신이 아닌 만인의 합의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회계약론 등은 계몽시대의 산물이었다. 이들 부르주아지와 젠트리 계급은 자신들의 주장을 신문에 실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다.

당대 신문을 부르주아지와 젠트리 등 특정 계급의 정파지이며, 기자는 이들의 나팔수였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특정 계급의 권리 투쟁의 목적과 정파지로서의 언론의 역할과는 별개로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 그 저변에 흐르는 자유와 평등의 정신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본인은 소싯적 기자 지망생으로 돌아가 그 뽕에 취해, 당대 언론에 대해서 본인의 순진한 환상을 덧칠해 평가해 본다. “신문은 계몽의 성서(聖書)이며, 기자는 자유와 평등의 투사였다.”

본인이 그린 기자는 압제자의 권력과 탄압에 맞서 싸웠으며, 불평등의 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를 자유와 평등으로 인도했다. 언론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찌라시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황색언론의 시대, 국가와 권력자의 선전매체화 논란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시대 언론은 뉴미디어의 등장과 매체 범람에 따른 ‘가짜뉴스’와 ‘어뷰징’ 문제라는 진통을 겪고 있다. 숫자놀음, 조회 수라는 표현으로 멸칭(?)되는 트래픽(traffic)은 언론사의 수입원이다. 대다수의 언론이 트래픽을 얻기 위해 동일한 기사를 포털에 반복·전송하는 어뷰징을 시도하며, 개중에는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단 낚시기사와 거짓정보를 담은 가짜뉴스를 전파하기도 한다.

생계가 시급한 이들을 향해 마냥 돌을 던질수 만은 없다. 뉴스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이들에게 떠넘기기보다는 언론사가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미디어 환경과 열악한 정부의 지원정책을 돌아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조직과 개인의 힘만으로는 망가진 뉴스 생태계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계몽의 투사로서의 언론인이라면 결코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언론인으로서 언론의 역할과 본질, 자신의 사명감을 자각할 때, 내면으로부터 거룩한 계시를 받기 때문이다. “언론을 계몽하라”, “주체성을 찾아라”, “해법을 모색하라”

-익명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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