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사제들에 대한 그녀의 유언이다. "30명의 사제들은 내가 죽고 난 30일 동안 의무적으로 매일 미사를 올려 달라. 그 대가로 5데나레의 보수를 주어라." 그 외에도 수녀원장의 유언장에는 많은 기록들이 있지만 두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그녀의 죽은 날을 기념하는 날에는 수도원이 30대의 미사를 올려라,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댓가로 30데나레를 주어라. 이날 100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5데나레를 나누어 주어라'. 돈 가치는 잘 알 수 없지만 5데나레를 가지고 100명이 나누러 가진다고 하니 상당한 금액으로 추측이 된다. 다른 언급은, 3개의 수도원이 각각 30일간 그녀의 무덤에서 한 푸살터를 기도하고 그 댓가로 3졸리디를 지불하라고. 한 수녀원장이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너무 철저해 오히려 처절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많은 금액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귀족 출신임을 암시한다.

이번에는 1447년에 죽은 바이에른 지방의 귀족 루드빅히의 경우다. 그는 수도자들의 성가대에 16개의 의자를 갖추고, 거기서 사제들이 4그룹을 지어 6시간 내내 영원히 타는 촛불 앞에서 푸살터(시편 150편)를 기도하거나 노래하라는 거다. 그 외에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15명의 사제들을, 또 35명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는데, 물론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사실 그가 명시한 것 중에서 그대로 행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것은 장장 100명도 아닌 1000명이나 되는 가난한 이들을 자선시설을 세워서, 이들을 한 곳에 모아 그를 위해서 시편 기도를 바치게 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왜냐면 1000명이 들어가 기도할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여러 마을과 도시로 분산되어 수용했다고 한다.

알브레히트의 장례식 때는 3일 동안 1500명의 거지를 대접했다. 음식뿐만 아니라 맥주까지 제공했고, 그들이 돌아갈 때는 손에 용돈까지 일일이 쥐어주었다. 귀족 울리히의 장지에서는 거지 3500명에게 대접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사학자 스피쓰 교수가 밝혔다.

천국이 아닌 지옥과 연옥에 대한 공포 분위기는 중세 초기에서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도 여전하다 한 예로 집을 팔아서 그 값의 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머지는 비엔나의 스테판 교회에 희사한 뒤, 그의 영혼을 위한 미사를 올려달라고 한 유언도 있다. 무역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오토 바이쓰(Otto Weiss: 1427년)가 죽으면서 친척과 친구에게 남긴 유언 내용이 있는가 하면, 루트비히 7세의 경우는 자신의 장례식 때 1000명의 가난한 이들을 매일 불러 음식을 제공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출처: ‘기독교 사상’ 2019년 6월호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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