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연구소 ‘꿈꾸는다락방’ 대표

[금강일보] 팬데믹 단계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감염 우려 탓에 외출을 자제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식을 줄이고 삼시 세끼 완전한 ‘집밥’을 먹는 일이 생활화됐다. 

어쨌든 음식이 주는 기쁨은 단지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뿐 아니라 식탁을 둘러싼 분위기도 느끼는 것이기에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역할과 가치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이 음식 재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과 그 음식을 친구들과 나누는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긍정적인 생각을 끌어올리고 친구들을 식사에 초대해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여기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은 시험에서 떨어지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에는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이 있었는데 재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은숙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농협에 다니고 있지만 답답한 시골을 떠나 서울살이를 꿈꾼다.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해 떠나고 싶거나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이곳에서 혜원은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며 땅에서 자란 건강한 농작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나눈다. 밭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시간은 혜원의 상처 난 마음의 밭을 갈고 엄마를 이해하며 스스로 돌보는 시간이다. 농작물이 자라나는 만큼 혜원의 마음도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등장하는 음식들은 모두 혜원의 기억과 맞물려 있다. 말없이 떠나버린 엄마와의 기억들과 마주하며 원망스럽기만 했던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고, 친구 은숙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어릴 적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려 엄마가 선물했던 ‘크렘 브륄레’를 만들기도 한다. 또 눈물을 쏙 뺄 만큼 매운 ‘떡볶이’와 알싸한 ‘막걸리’는 마음이 심란한 친구들을 위로한다. 

이렇듯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은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상처를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쁜 일상에 쫓겨 얼굴을 마주할 여유조차 없던 우리에게 매일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은 어쩌면 단순히 식사의 의미를 넘어 그동안 소원했던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까. 삼시 세끼를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을 것인지 온전히 먹는 일에만 집중해보자. 왜 지금 그 음식이 먹고 싶은지 서로의 욕구와 연결된 기억을 소환하다 보면 그 마음에 귀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세상 어떤 바이러스도 이겨낼 수 있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식탁의 힘이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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