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

중세 유럽의 왕족·귀족들이 왜 이리 사후를 위해 안달했을까? 이미 앞에서 약간 언급했던 대로, 이런 사후관리의 근원은 당시의 지옥, 연옥 그리고 부활 교리 때문이었고, 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고 마태오복음 19장 23절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성서구절은 알고 있었지만 인간이다 보니 죄를 짓지 않는 삶은 있을 수가 없었고, 생전에 지은 죄를 본인이 가톨릭의 교리에 따라 직접 풀고자 노력했지만 그것 또한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죽고 난 후 남은 후손들이 끊임없이 신에게 기도를 해주면 그 죄를 탕감 받을 수 있고, 성서에 있는 대로 언젠가는 천국에 가는 데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거다. 조상이 천국에 가는지 갈 수 없는지는 지상에 사는 후손들의 몫이 되어버렸고, 후손들도 교리에 따라서 열심히 기도하고 수도원 등에 물질을 많이 갖다 바쳐서 어찌하든 자기 조상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만 했다. 지금으로서는 좀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이지만, 당시는 그 교리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당시인들의 천국 가는 데 중요한 매체는 바로 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오늘날에도 천국·지옥과 연옥의 교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데, 왜 중세인들만큼의 그런 간절함은 사라져 버렸을까? 아무튼 사후 세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한 듯한데,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서인가? 당시의 그런 교리가 진리였다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당시만큼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에서 해가 지는 자연의 이치는 그대로임에 비해서, 종교에서 주장하는 교리의 진리는 시시때때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일까? 출처: ‘기독교 사상’ 2019년 6월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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