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뜬금맞게도 그 추운 날 나는 파리 폐르라쉐즈 공동묘지에 있었다. 파리 그 화려한 도시에 도착해서 왜 무덤으로 들어갔을까?

나는 쇼팽을 만나러 갔다. 쇼팽이랑 진한 인연이 있다기보다는 그때 그렇게 쇼팽이 좋았다. 그런데 무덤은 우리나라 동산 위에 한 두개있는 형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어나간 파리사람들이 착착 쌓여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돼있었다. 찾다 찾다 너무나 추워서 포기하고 찻집에 앉아서 인생을 한탄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한 프랑스 청년이 “한국에서 왔느냐”며 반갑다고 했다. 외국에서 친절한 사람은 진짜 친절하거나 도둑놈이었다. 떨떠름하게 있는데 자기도 “이응노 화백 만나러 왔다”고 반갑다고 거듭 말했다. 심지어 커피도 사주면서 이응노는 자신에겐 영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군인인 줄 알았다. 밝게 웃으며 나도 존경한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이응노 선생님을 몰랐다.

이역만리에서 커피까지 사주신 이응노 선생님이 누군가 찾아보니 세상에나 화가였다. 심지어 미술관이 대전에 있단다. 나는 쥐며느리인가? 지하에 사는가? 어째 아는 게 없는가. 한국에 돌아와 작정을 하고 찾아갔더니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셨다.

대전에 미술관이 있는 건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찾아 들어가 선생님과 나의 사랑이 시작됐다. 조국에 버림받고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이방인이라 여겼던 선생님은 스스로를 에뜨랑제(이방인)라고 불렀다. 파블로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를 한국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닉네임이 ‘Eddeurangje’다. 나는 대전에서 세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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