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금강일보] 입향조가 어느 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무를 심었다. 세월은 흘러 자식이 태어나고 사람이 모여들어 그곳은 마을이 됐다. 나무는 어느덧 자라 하늘을 가리고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나무가 거대할수록 이곳에 사람이 사람을 지키며 잘 지내왔다는 증거가 돼 줬다. 어디라고 사람사는 곳에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마을에서는 잘못을 가르쳐 선함을 다독이며 무리없이 이어온 것이고 그 덕에 수백 년이 되었으리라. 때문에 마을 앞 나무는 자부심이 되고 정체성이 됐던 것이다.
최근 원도심을 오가면서 옛 충남도청 부속건물이 보수되는 것을 지켜봤다. 높게 가림막이 있었지만 3층 높이 건물이 달라져 가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정말 예민하게 지켜봤다. 그러나 그 아래 그 나무를 지켜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부끄럽게도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며 12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이 투입됐고, 시민에게 무엇을 주려 했는지 모르겠으나 향나무 128그루가 사라졌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사오던 그 해 나무도 함께 이사왔으니 80년생이 아니라 백년생 가까이 되는 나무라고 봐야 한다. 40여 그루는 이전시켰다는 걸 봐선 분명 나무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계획을 지켜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텐데 아무도 막지 못하고 끝내 베어졌다. 소유주인 충남도와 곧 주인이 될 문화체육관광부도 기함했다. 가장 놀란 것은 바로 대전시민이었다. 아무리 원도심 백년, 시간을 다뤄본 적이 없는 도시라지만 어떻게 이런 무모한 결과를 만들었는가?
사과라는 말을 입에 대지 마라. 나무를 다시 붙여 놓을 수 있다면 그때 사과해라. 집앞에 제 스스로 자란 민들레 한 폭도 뽑기 두려워해야 하는 게 생명을 대하는 사람의 도리다. 시민은 대전시에 실망했다.
2006년 한미FTA 반대 시위자들이 지금 위치의 향나무에 불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법원은 배상금과 함께 원형복구 명령을 내렸고 비슷한 수령의 같은 형태의 향나무를 전북 정읍에서 구해 복구해야 했다. 그만큼 충남도청의 향나무 사랑은 극진했다. 그때는 충남도 관할 향나무였다. 그렇게 10년도 안 돼 시가 한 짓을 보라. 아무래도 문화재가 된 옛 충남도청은 시가 맡아서는 안 되겠다. 못 믿겠다. 잘못은 시가 하고 왜 그 부끄러움은 시민 몫이 돼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