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김미진 기자] 이름은 그들의 존재가 소멸되기 전까지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인간은 정해진 수명동안 자신이 가진 이름의 가치대로 살고 그런 인간들이 살고 있는 대지의 명칭은 그곳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시간을 대변한다.

대전의 옛 지명, '한밭'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대전이 되기 이전 크고 넓은 밭이었던 이 땅의 모습을 그대로 따와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이 생성되는 원리 중 가장 큰 부분은 그 지역의 정체성이다. 저 옛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이 전부 스며든 곳. 현재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 등 5개 자치구로 나눠진 대전의 옛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 이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대전 내 적잖은 지역들은 '도자기'와 관련된 명칭을 가지고 있다. 확언할 수는 없으나 이를 가지고 유추해봤을 때 옛부터 도기와 자기의 생산 및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동구의 경우 안말, 뒷골, 안골, 사기점골에 걸쳐 마을이 생성됐다. 옹깃밥머리와 황세울이라는 곳도 있다. 전부 옹기와 관련된 단어다. 대전 내에서 16곳 정도가 사기점골이라 불렸는데 이 곳 전부 최근 600년 간 사기그릇을 굽던 곳이다. 대동은 가마터가 존재해 '가마골'이란 지명이 붙었다.

둔산동 일부와 장안동, 산직동 역시 가마골에 포함된다. 관저동과 반석동은 '요골'이라 불렸는데 요골 역시 자기 생산을 하던 가마터가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 그 인근에는 백토골, 분토골이라는 곳도 있었는데 이 두 곳은 자기 자재로 사용이 가능한 백토 생산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백토골에서는 화학적 작용에 의해 바위와 돌이 분화된 흙, 철 성분이 강한 화성암층이 발달돼 있어 고령토 생산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도자기와 관련된 명칭을 가진 곳들은 주로 중구 보문산 주변, 계룡산과 학하리, 흑석리 주변에 분포돼 있다. 산지들이 많아 태토가 되는 질 좋은 흙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지리적으로 자기를 생산하는 데 매우 좋은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전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대전시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박태우의 '대전 도자문화의 현황과 과제'를 보면 1990년대 초 대전시 향토사료관의 지표조사 결과 보문산 남쪽 기슭에서 고려청자와 상감청자,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가마터가 있었으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에 걸쳐 해강도자미술관의 발굴조사로 대전지역이 중부권 최대의 도자문화 중심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며 "대전의 옛 지명은 이와 같은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 곳만의 특성을 만들고, 그 특성은 바로 지역의 정체성이 된다. 몇 백년 전,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선 땅과 그 땅을 이루는 흙을 통해 그들의 삶을 꾸려나갔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대전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늘 변함없는 우리의 도시. 앞으로 써내려갈 대전의 역사는 바로 우리다.

김미진 기자 kmj0044@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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