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일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이다. 83개국 1위로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는 중이다.
심지어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의상, 놀이 도구들이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단다. 오징어게임은 우리 어렸을 때의 놀이로 구성된 잔혹한 생존게임 드라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오징어게임, 구슬치기 등을 통해 생사를 가르는 내용이다.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놀이를 하는 아주 단순한 구성의 드라마다. 현재 코로나19로 부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사람들은 주식과 비트코인 등 자본소득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헛된 욕망이라고 하기엔 빈부격차가 너무나 벌어진 상태라 젊은층 일부는 영끌(영혼까지 끌다)이라도 하여 빚을 지고, 주식투자와 비트코인에 빠져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놀이의 단순함과 사회적 공감대가 크게 작용하여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부분도 있다. 게임에는 소수의 승자 뒤에 수많은 패자들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와 다수의 소시민, 소수의 가진 자와 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가 있다.
오징어게임은 단순한 게임의 형식을 빌렸지만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다양한 측면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양육강식의 세상, 돈이 중심이 되는 세상, 공정성을 외치지만 평등하지 않는 세상 등 마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설국열차에서는 사회의 구조를 막스나 베버의 갈등주의 이론을 담아 은유적으로 보여주었지만 표현은 직설적 화법에 가까웠다.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반란의 모습으로.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권력을 탈취하거나 사회구조의 거대한 담론적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그저 빚에 쪼들려 벼랑 끝에 모인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통해 인생역전을 노리는 에피소드가 전체를 이룬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머리가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주인공(이정재)은 정말 어수룩했다. 그런데 가장 인간냄새가 났다. 그는 사람을 우선시한다. 소외된 노인을 배려할 줄 알고 함께 나눌 줄 안다.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은 저서 ‘호모루덴스’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놀이하고 경쟁한다고 했다. 놀이하고 경쟁하는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승리다. 하지만 승리를 누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하는 승리는 제대로 된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본인을 포함하여 전부가 지는 게임인 것이다.
지금 문화가 세상을 이끄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역사회는 수도권과 다르게 문화예술 측면에서도 늘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지역사회에서 지속가능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들의 예술문화활동 확장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과 예술가를 위한 지역문화예술 플랫폼을 구축, 지역 안에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주민과 예술가 모두 누구나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독서, 토론,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토론과 공연 문화가 상시 이루어지는 곳. 문화와 휴식, 교육이 함께 어우러져 누구나 이기는 게임을 하는 대전을 꿈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