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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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일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젖은 마들렌을 먹다가 소년시절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 시절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탄생했다. 이렇게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그 시점, 그 공간을 기억하는 일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시간이 멈춰버린 요즘 우연히 에그타르트 하나를 맛보게 되었다. 바사삭 소리와 함께 깊은 부드러움이 밀려들었다. 눈이 번쩍 뜨여 나는 어느새 포르투갈 벨렝빵집(Pasteis de Belem)으로 순간이동 해버렸다.

수년 전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포르투갈에 왔으면 이건 꼭 먹어보라며 지인이 한 가게를 가리켰다.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그곳에 나까지 합세하고 싶지 않았다. 마드리드 타구스 강가의 눈부신 공원은 곧 바다를 만나는 강 끝줄기라서 이미 충분히 눈귀가 만족스러웠다. 이곳에서 바스쿠 다가마와 엔리케 왕자가 새 땅을 찾아 미지의 바다로 떠나갔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그러나 입도 만족시키라는 이끌림에 못 이기는 척 줄을 서서 네 개를 샀다. 작은 종지만한 타르트를 받아들고 거리에 앉아 베어 무는데 그 소리가 바사삭 보들, 달콤하며 입안에서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지인 것까지 네 개 모두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벨렝타르트를 맛보고 난 후 타구스 강이고 바다고 리스본이고 엔리케 왕자이고 모두 다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수도복을 다리기 위해 흰자가 대량으로 필요했고 노른자는 남겨졌단다. 그것으로 파이식 타르트가 얼떨결에 만들어졌고 어느덧 기업이 되었다. 주방에 비법을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타르트의 정확한 레시피를 아는 사람은 세 사람뿐이라서 셋은 비행기도 같이 타지 않는다고 한다. 벨렝은 베들레헴이란 뜻이니 천국의 맛인 셈이다. 이름도 잘 지었다.

그 맛을 대전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내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미세하게 다른 맛이라지만 크기가 두 배 이상이니 뭐라 할 것도 없다. 광고도 안 하는 작은 빵집의 이름은 그린 베이커리였다. 포르투갈은 가본 적 없다는 청년사장은 몸이 아파서 대학을 포기하고 빵을 배웠단다.

그것이 너무 재밌어서 평생직업으로 삼기로 하고 긴 시간 제빵사로 일하다가 개업을 하게 되었단다. 혼자 연구하고 실험해서 완성한 레시피는 비단 에그타르트에서만 최상이 아니었다. 크라상과 바게트와 치아바타에서도 그 맛은 특별했다.

20대로 보이는 외모에 주방에서 밖으로 나타나지도 않는 등이 약간 굽은 사장은 맛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걸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청년사장을 보며 ‘독짓던 늙은이’가 생각났다. 완벽한 타협없는 장인이라는 말이다. 빵은 정직하다고 하더라.

그 빵이 맛있는 이유는 하나하나 현지의 최상의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이렇게 맛으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 어쩌다 갇힌 나로서는 감동할 노릇이었다.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데 그런 고민도 이곳엔 없이 빨간 작은 문으로는 개미지옥에 빨려들듯 쉴새없이 사람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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