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협동조합 이사

[금강일보] 대전에는 마당극패 우금치가 있습니다. 1990년 만들어진 그 패는 올해 31년이 되었습니다. 마당에서 공연하는 패걸이들이 코로나 2년 동안 마당에도 서지 못하고 극장에도 서지 못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럼에도 '적벽대전'이라는 공연을 올렸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이 아니라 붉을 적(赤), 푸를 벽(碧), 도시이름 대전(大田)입니다. 바로 냉전시절 어느 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포함 국민보도연맹 인원까지 무려 7000여 명이 학살되어 골령골에 암매장되었습니다.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는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아주 조용히 묻혀버렸습니다. 그렇게 올해로 70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금치는 지난 10년간 산내 폐교를 빌려 극단을 운영하며 골령골 작은 위령제에 언제나 함께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것은 우금치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것 같아 공연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공연은 흙 둔덕에 얼기설기 누워있는 시체들이 일어나면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 얽혀진 시신들입니다. 시신들은 일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놀고있습니다. 그러더니 학교에 갑니다. 그곳에서는 하얀 꽃잎을 든 쑥부쟁이 요정과 함께 쑥부쟁이 걸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꽃의 걸음을 배우면 서천 꽃밭(서방 극락세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유는 분노와 증오와 기억을 두고 오지 않으면 서천 꽃밭에 못가는데 누군가 다시 이생의 기억을 불러 들여온 겁니다. 이번 보름달에도 실패하며 극은 이생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죽은 4.3사건, 여수·순천사건, 보도연맹의 관련자들이 골령골에 묻혀있습니다. 어떻게 그날의 억울함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미순이가 등장해서 어려서 보낸 오빠 동호의 기억을 풀어냅니다.

6살에 오빠를 잃은 미순이는 징병에 끌려갔다가도 살아 돌아와 야학을 하던 오빠가 대전형무소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오빠를 만나러 갔던 엄마는 고문으로 녹초가 된 아들을 보고 통곡을 했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아들을 지옥에 두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게 미안해서 가슴을 치며 백 리 길을 걸어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미순이는 자라 70대 할머니가 되었고 오빠가 죽었다는 골령골을 찾아와 술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위로를 받아서였을까요? 그 달 보름 쑥부쟁이 걸음을 배워 골령골 귀신들이 쑥부쟁이 꽃을 타고 서천 꽃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붙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좀 지치겠지만 아직 가지 말라고 설득하고 싶어졌습니다. 극을 마치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우금치가 무너지기 직전이랍니다. 적벽대전을 만들고도 상설공연을 못한답니다. 사람이 안 오기 때문이랍니다. 세상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거리에 서기로 유명한 우금치는 그렇게 2018 예술경영 우수사례로 뽑혀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전의 광장에서 부르짖어 주던 우금치가 어렵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우금치를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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