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물관람문화 필요하다

송인선-고담(古談), 목판에 아크릴 채색.
송인선-고담(古談), 목판에 아크릴 채색.

[금강일보] 1984년 5월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역사 깊은 동물원은 창경원에 있었다. 세종연간에 상왕이었던 태종의 거처로 축조된 수강궁은 그 후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거쳐 창경궁으로 이어져 왔는데 경술국치 1년 전인 1909년 일제는 창경원이라는 명칭으로 격하시키고 이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던 것이다.

왕조 건물을 유원지로 격하시킨 교활한 책략 아래 위락공간이 된 창경원 동물원은 광복 이후에도 40년 가까이 일제강점기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왔던 셈이다. 정부수립 후 6·25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시기를 거쳐왔다지만 민족적 치욕의 흔적을 바로잡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방치했던 지난날의 무감각이 새삼 돌이켜진다.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었던 1970년대까지 창경원은 도심의 유원지, 벚꽃놀이터 그리고 가족나들이, 청춘남녀 데이트 장소로 우리나라 대중문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꾸며온 셈이다.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할 때까지 129종 880마리의 동물들이 비좁고 열악한 공간에서 대중에 공개되어 왔으니 지금 이야기하는 ‘동물권’의 개념조차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꾼 용인자연농원이 1976년 개장하고 사파리 방식이 도입되기까지 밀폐, 밀집, 밀착된 동물사육 여건은 대단히 열악하였다.

전국 대도시에 조성된 동물원 역시 대부분 종전 방식에 머물러 이제는 동물원 관람문화에 일대 혁신이 필요한 듯 싶다.

2022년 범띠 해, 아이들 손을 잡고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 나들이를 나서는 발걸음이 늘어날 것이다. 넓은 부지에 서식환경을 최대한 개선하여 차량을 타고 차창밖으로 호랑이며 사자를 관람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곳도 있다지만 갇혀있는 동물들의 스트레스며 곤궁한 사육환경은 여전하지 않을까.

그래서 폐쇄구조의 동물원, 우리에 가두어 두고 관람하는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을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1960년대부터 TV로 방영되고 있는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은 나날이 향상되는 촬영기법과 화질의 첨예화로 실물감을 북돋운다. 동물들의 숨소리며 털 한 올의 미세한 감각까지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갖가지 영상매체 특히 가상현실, 증강현실 미디어는 이제 굳이 동물원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현장의 느낌으로 동물과 인간의 조화로운 소통과 공존을 가능하게 해준다.

오랜 기간 먹이를 미끼로 조련을 통해 묘기를 펼치던 돌고래들을 바다로 방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이즈음 서식환경과 관리체제가 나름 선진화되었다 하더라도 자연생태계를 벗어나 콘크리트 우리에 갇혀 관람의 대상물이 된 동물들의 고단함, 그들이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곤경을 보며 우리가 즐거워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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