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는 단순히 전도연이 벗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화제작이 아니다.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를 리메이크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복원 작업을 지원, 2008년 칸 영화제에서 소개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다음달 12일에 시작되는 제63회 칸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세계가 인정한 이슈메이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치밀한 연출을 통해 원작보다 더욱 농밀하고 스타일리쉬한 성적인 긴장감을 선보인다. 여기에 디테일한 시선으로 파고든 인간 내면의 미묘한 욕망이 에로티시즘을 전한다.△백지처럼 순수한 그, 대저택의 하녀로시장에서 일하던 은이(전도연)는 객식구를 구하는 한 저택의 하녀로 들어간다. 선배인 병식(윤여정)의 지휘에 맞춰 하녀 생활을 하나씩 배워간다. 집주인 딸인 나미와 친해지고 대저택이 점점 익숙해진다. 별장으로 여행가는 식구들과 함께 나선 은이는 주인 남자 훈(이정재)과 관계를 갖고 그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뜨거운 관계를 갖고, 화장도 점점 짙어진다. 그 사실을 눈치 챈 병식은 해라(서우)의 어머니에게 은이가 임신한 것 같다는 추측을 얘기한다. 이를 알고 그에게서 애를 떼기 위해 청소 중인 은이를 밀친다. 훈도 은이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하녀’의 욕망과 세상을 향한 질타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하대하는 느낌 때문에 도우미, 가정부로 불려 최근엔 들어보지 못한 단어가 하녀다. ‘하녀’는 집안일을 시키기 위해 새로 고용한 여자 가정부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담아낸다.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잠입한 첩자가 아닌데, 은이가 살짝 건드린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고리는 결집력에 빈틈을 보인다. 그 사이에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은 돈과 권력에 눈 먼 다른 의미의 하녀를 보여준다. 그런 하녀들과 달리, 백치같이 순수한 은이는 위험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몸을 맡긴다. 은이 역을 맡은 전도연은 이번에 과감한 노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노출과 베드신을 구분지었다. 노골적인 대사와 침이 넘어가는 거친 숨소리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던 베드신과의 차별성이 엿보인다. 알몸으로 욕조에서 목욕하고, 길가에 버젓이 소변을 누는 장면으로 그 속에 감춰진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오히려 살짝 치마를 걷고 물기 묻은 허벅지를 드러낸 게 더 신경을 자극하기도 했다. 은이는 자기한테 불친절한 세상에 찍소리라도 내야겠다는 섬뜩한 결정으로 고귀한 상류층에게 도덕적 질타를 온몸으로 가한다.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이 만든 뜨거운 영화새삼 전도연이 얼마나 연기를 잘 했는지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상을 많이 받은 여배우며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눈빛과 자세만으로도 대사보다 더 많은 심리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는 순수함과 요염함이 공존하는 ‘은이’라는 새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 안에서 하녀-여자-엄마로 다른 인물의 삶을 살며 각기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그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는 이정재, 서우, 윤여정도 뼈대 있는 살을 추가시킨다. 마초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정재는 스스로 특별한 경험이라 밝혔다. 뻔뻔한 추악함과 거리낌 없고 냉소적인 ‘훈’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역할을 소화한다. 그는 밖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면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긴다. 사건을 안 후 오히려 장모에게 거침없이 퍼붓는 모습은 역겨우면서 잔인하다. 아빠에게 예의 갖추는 것을 배웠다는 딸의 대사와 아내 앞에서 태연한 모습은 그의 이중성을 상징하고, 이정재는 놀랍도록 이를 잘 표현한다. 하녀근성이 밴 속물로 돈이 되는 일에 앞장서 나선 병식 역의 윤여정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 속 유일하게 은이로 인해 변하는 인물로, 비록 오랫동안 웅크리고 살았으나 이제는 하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얻는다.△새로운 '하녀'의 주목할 만한 탄생‘하녀’는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영화다. 마지막에 나미를 정면으로 내세워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은 물론, 친절하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끌린 은이의 과거사 등은 모두 관객에게 맡기며 상상의 문을 열어놓는다. 은이가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가고, 훈과 관계를 맺어 아이를 가지고, 뱃속의 아이를 둘러싼 갈등은 사실만 보여줄 뿐이다. 이런 사실로 인간 내면에 깔려 있는 성적욕망의 표출과 자기의 잇속을 계산하고 돈 냄새만 좇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하녀’는 분명히 드러난다. 전도연의 노출로 관심을 보였고, 상류층의 하녀로 들어서며 영화가 시작했지만, 남은 것은 주인공의 알몸이 아니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다. 겉은 하녀란 직책이지만 속은 천진난만하고 작은 욕망을 좇는 은이와 겉은 멋들어진 사모님인데 남편의 바람에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끙끙거리고 어머니로부터 돈 앞에 수그리고 권력이 조아리는 법을 배운 해라. 과연 누가 진짜 ‘하녀’일까. ‘하녀’는 오는 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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