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사회의 현미경이자 망원경

전남 해남군 북일면 오소재에 조성된 오기택 ‘고향무정’ 노래비.
전남 해남군 북일면 오소재에 조성된 오기택 ‘고향무정’ 노래비.

[금강일보] 대중가요 가사를 들여다보면 각기 독특한 감수성과 표현으로 사람과 세상을 노래하는 저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별다른 오락매체가 많지 않던 1960~70년대 우리 가요는 대중의 애환과 시대 트렌드를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한 곡으로 압축하여 노래한 탁월한 문화콘텐츠였다.

지난주 별세한 오기택 원로가수(1939∼2022)가 부른 1960년대 이후 가요를 일별하면 당시 시대상과 삶의 정경이 선명하게 펼쳐지고 앞으로 올 세상을 미리 짚어보는 예언의 성격도 드러난다.

대표곡 ‘영등포의 밤’은 1960년대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지였던 영등포를 배경으로 희로애락과 원초적인 사랑의 아픔을 평이하면서도 절실하게 노래했다.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는 영등포의 밤 내 가슴에 안겨 오는 사랑의 불길 고요한 적막 속에 빛나던 그대 눈동자 아 영원히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이여….”
영등포를 다른 지명으로 대체해도 서사는 이루어지겠지만 당시 영등포의 역할과 상징성은 우리 사회 발전에서 의미 있는 좌표의 하나였다. 서울 강남지역이 본격개발되기 전의 명칭이 ‘영동(永東)지구’였는데 바로 ‘영등포 동쪽’이라는 의미였으니 영등포의 무게감과 비중을 짐작해 본다.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아직까지 나에게도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으로 기억하는 ‘아빠의 청춘’에서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고령사회, 노인문제 관련된 이런저런 화두를 60년 전에 시사하고 있다.

또다른 대표곡 ‘고향무정’의 가사는 이농현상으로 인해 급속히 피폐해지는 농촌 공동화가 가져온 적막한 감성을 앞당겨 노래하였다.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마도로스 박’에서는 197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할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주역이 느끼는 감상을 피력한다. 원양어선, 유조선, 컨테이너 화물선 등을 몰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우리 해양인력의 고단하지만 보람 있는 삶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꿈같이 보낸 세월 손을 꼽아 몇몇 해냐 얼마나 그리웁던 내 사랑 조국이냐 돌아온 사나이는 아아아아 그 이름 마도로스 박...”

1960년대에 이미 앞으로 다가올 사회변화를 노래에 담아 불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정밀한 예측과 학문적인 사회분석으로 쓰여진 가사는 아니라 해도 그리 머지 않아 우리 사회가 당면하게 될 여러 현안을 1960년대 대중가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 깊다. 이를테면 사회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현미경이자 동시에 다가올 미래를 조망하는 망원경의 기능이 함께 부여된 셈이다.

그나저나 대중가요의 매력의 하나가 편안한 감성 토로로 정감을 공유하며 소통을 노래하는 기능인데 ‘충청도 아줌마’라는 오기택 가수의 노래는 유려하고 매력적인 저음과 풍부한 성량에 실린 노랫말 구절구절을 음미하며 들을 때 매력이 배가된다.

이 숱한 대표곡들이 짧은 기간에 발표되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기록도 대단하다.
이즈음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남녀노소의 인기를 모으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들도 반세기 이후에 2020년대 우리 사회의 감성을 조명하며 계속 새로운 정서와 공감을 일깨웠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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