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오동선 벚꽃길 초입. 데크길을 따라 눈부신 벚꽃터널이 펼쳐진다.
26.6㎞ 오동선 벚꽃길 초입. 데크길을 따라 눈부신 벚꽃터널이 펼쳐진다.

전쟁 중에도 꽃은 핀다. 봄 햇살이 창백한 겨울 입술에 수분하면 옹알이 터지듯 피어오르는 꽃들. 그 속으로 들어가면 꼭 젊음이 영원히 지지 않을 것만 같다. 풍향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끝없이 밀려가는 바람 따라 가는 꽃잎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만 갈 것. 그것이 바로 봄의 법칙인 것 같다. 선뜻 물가에 앉아 고인 듯 고이지 않은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며 앉은 당신이 점점 견고하게 꽃이 되어가는 장면이 보일 때까지 아직 봄은 설익은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4월 둘째주에 찾은 대청호오백리길 , 아직 어렴풋하지만 점점 진해져만 가는 향기가, 만개해 가는 모습이 5구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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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 오동선
무려 26.6㎞에 달하는 이 길은 본래 '회인선 벚꽃길'로 알려진 5구간에서 가장 유명한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이다. 대전시 동구 신상동에서 시작된 이 길은 옛 고속도로였던 지방고도 517 회남로를 따라 충북 보은군 회남면으로 이어진다. 당시 고속도로를 회인선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회인선 벚꽃길'로 알려져 있었으나 대전시 동구가 지난해 11월 '오동선 대청호 벚꽃길'로 변경했다.
국립수목원이 선정한 '아름다운 벚꽃길 20선'에 포함됐을 정도로 낮이나 밤이나 벚꽃의 찬란한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하다보니 평일(금요일) 오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코로나19 상황에 '대청호 벚꽃축제'가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웃음이 가득한 게 느껴졌다. 사진을 찍는 이가 있으면 서로 기다려주고, 남녀노소 손 잡고 벚꽃 사이를 거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차가 엉키고 설켜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게 매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재촉하는 경음기 소리 하나 없었다. 고즈넉한 벚꽃의 모습과 향기가 사람들에게도 퍼져 전염된 것처럼 말이다. 근 3년간 잃어버렸던 봄을 되찾은 기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다.

 

#. 5구간 흥진마을 원점회귀코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은 앞서 말했듯, 폐고속도로 옆길 신상동에서 시작하며, 걷기 좋게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가면 왼쪽으로는 호반을, 오른쪽으로는 흥진마을을 끼고 갈대 사이 길을 걸어볼 수 있다. 대청호 수변을 따라 조성된 길을 따라 약 40분정도 걸으면 한방오리 요리로 유명한 '조선'이라는 식당이 나오는데 이곳 주차장에서 식당을 지나면 5구간의 원점회귀 코스가 시작된다.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정도로 걸어볼 수 있는 이 길은 다른 구간, 혹은 다른 길보다도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심하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중간중간 대청호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벤치도 놓여 있어 오래 걷기 어려운 어린 아이들이나 노인 분들도 많이 보였다. 대청호 건너편엔 벚꽃길이 있어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멀리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걸어서 30분 정도 들어가다 보면 4구간에서 볼 수 있는 황새바위나 명상정원 등 대청호의 명소들 역시 멀리서 볼 수 있어 그 풍경의 멋이 더해진다. 갈대나 억새가 양 옆에서 길을 인도해주고, 다른 구간에 비해 지형이 험하지 않아 호수 바로 앞에까지 갈 수 있어 슬쩍 손을 담가볼 수도 있다.

 

 

흥진마을 방향쪽으로 곡선을 이루며 흐르는 길에 오래된 배 한 척 정박해 있는 곳이 있었다. 뱃머리가 호수를 향한 걸 보면 아직 항해의 미련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호수에 퍼진 햇살의 윤슬을 찬미하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억센 나뭇가지들도 많지 않아 사진을 찍기에도 좋았다. 계속 걷다보니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그래도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고 편안한 보폭의 걸음들이 오갔다. 평온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강아지들도 혓바닥을 내밀고 신나서 종종걸음을 계속하는 걸 보니 정말 좋은 날은 좋은 날인가보다. 갈대밭 추억길이란 이름이 붙은 것처럼 대청호를 왼쪽에 두고 푹신한 느낌을 주는 흙길을 걷다보면 좋았던 추억은 반짝거리는 물빛처럼 떠오르고 씁쓸했던 추억도 대청호의 물살이 고요히 씻어가니 이만큼 사색에 젖기 좋은 곳도 없다. 3㎞ 남짓 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흥진마을 원점 회귀코스가 끝났다. 넓게 펼쳐진 풍경 한 번 들이마시고 마음 속에 쌓인 먼지 한 번 크게 내쉬어 본다.

 

곧 벚꽃은 지겠지만 봄은 계속될 것처럼, 우리의 청춘도 계속해서 흘러간다. 지나간 것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길 길에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순간을 고맙게 만들어주는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 아마도 이 계절은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켜야 할, 또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간다.
글=김미진 기자, 사진=김미진·박정환·차철호·김동직·박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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