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수입업체 원가 부담 줄고 수출업체 매출 하락
수출경합하는 철강·기계·자동차·석유화학, 소비재 업체 불리
업종 상관없이 변동 폭 커질 환리스크 대비 필요

[금강일보 정은한 기자] 일본을 잃어버린 40년으로 이끌 ‘나쁜 엔저’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국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다만 수출·입 업체의 경영 여건이 엇갈린 가운데 충청권 중소기업의 환리스크 대비가 필요하다는 경고음이 뒤따르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일본 원-엔 환율은 100엔당 967.97원으로 지난 3년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였던 2020년 3월 20일 1191.34원과 비교하면 무려 23%나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심지어 달러당 엔화 환율(128.46엔)은 지난 2002년 5월 이후 20여 년만에 최저치로 다가가고 있다.
이 같은 엔화 절하가 급격히 이뤄진 것은 엔저 기조로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 회복을 노리는 일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따른 것이다. 다만, 일본 정부가 지나친 엔저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을 풀어도 지난 3년간 소비자물가가 1.9%밖에 오르지 않을 정도로 소비 회복이 더딘 데다가 코로나19발 공급 병목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잿값이 치솟으면서 수입액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258%)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2위라서 기준금리를 높이는 것도 쉽지 않다.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엔저 기조는 달러 다음으로 일본 돈이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는 데 따른 자신감 넘치는 정책이다. 일본 기업들이 수출 대금을 엔화로 환전하는 심리가 지나친 엔저 현상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기업의 해외생산 비율이 2002년 17.1%서 2019년 23.4%로 확대된 데다가 해외직접투자가 늘면서 일본 정부의 예상 외로 엔화 절하가 심화됐다. 이에 일본기업들은 수출 매출은 늘어난 반면, 원자잿값 수입 비중이 커져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는 실정이다.
충청권 경제는 ‘나쁜 엔저’에 따라 득과 실이 엇갈린다. 대일 수출업체는 원화 강세로 수출액이 감소하는 반면, 일본산 소재·부품·장비 의존도가 큰 제조업체들은 수입액 부담이 낮춰졌다. 물론 충청권 내 소부장업체에 대한 거래가 늘어나는 등 충청 내수가 확대됨으로써 산업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대전 제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의 대일 수출이 떨어지면 협력업체 타격이 발생한다. 특히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큰 철강·기계·자동차·석유화학 등에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며 “다만 원자잿값 부담이 크고 아직 일본 소부장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한 현 시점에서 엔저 현상은 득이 많은 게 사실이다”라고 분석했다.
항공·여행업계는 엔저를 기반으로 가까운 일본 여행이 늘어나 매출 회복이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일본관광객이 충청권에 덜 찾아와 대일 여행수지 적자가 예고된다. 또 충청권 화장품·식품업계 등 일본 내수 시장을 노리는 소비재 업체는 대일 수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무엇보다 업종과 상관없이 급변동할 원-엔 환율에 대비해 환리스크 대비가 주문되고 있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