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추억

‘서울’을 외국에서는 제각기 그 나라의 음운체계에 따라 발음한다. 중국에서는 서우어르, 일본인들은 소우루, 프랑스인들은 세울이라고 소리낸다. 그러나 서울(Seoul)이라는 표준발음은 세계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예프로 오랫동안 불려졌는데 그 이름이 러시아식 명칭이었고 우크라이나 발음으로는 키이우라고 이번 전쟁을 통하여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세계인들의 우정과 성원은 금세 키이우라는 명칭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벌써 두 달이 넘는 기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힘겹게 항전하고 있다. 공원 벤치 하나에도 독특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두드러진 문화도시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토의 온전한 보전을 바란다. 무고한 인명 희생은 물론 귀중한 문화유산이 무차별 파괴되는 21세기 반달리즘의 조속한 종식을 기원한다.
2016년 10월 일주일 남짓 키이우에 체류했던 추억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키이우 국립 타라스 쉐브첸코 대학교 한국어문학과가 주최한 한국문학의 날 행사에서 김석원 교수가 이끄는 한국어문학과의 행사준비는 완벽하였다. 특히 통역을 맡은 3, 4학년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감탄스러웠다.
전혀 이질적인 외국어인 한국어를 불과 2-3년 학습하여 전문적인 문학 담론을 통역하는 역량은 칭찬받을 만하였다. 더러 매끄럽지 못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해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던 훌륭한 봉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어, 한국문화 열기 속에서 학생들은 열정과 의욕에 충만하여 장차 두 나라를 이어주는 교두보로서의 성실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행사가 열렸던 타라스 쉐브첸코 대학교, 우크라이나 최고의 민족시인 이름을 이어받는 곳은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거리, 공원, 공공기관 이름은 물론 동상, 화폐, 우표 등 일상 곳곳에 쉐브첸코는 민족 동질성을 상징하면서 걸출한 국민시인을 흠숭하는 공감대로 이어져 있었다. 300년에 걸친 외세 지배를 지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 체제에서 독립하였지만 그 후 줄곧 러시아와의 분쟁과 충돌이 끊이지 않던 중 이번 전쟁이 발발하였다.
타라스 쉐브첸코 (1814~1861, 우크라이나 발음으로 셰우첸코라고 하는데 아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쉐브첸코로 표기). 사후 160년이 넘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은 그의 시와 함께 살아 숨 쉬는 듯하였다. 미술과 문학을 공부했고 농노 신분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의 굴곡 많은 역사와 민중의 감성을 다양한 음조로 노래한 시인이었다. 러시아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10년에 걸친 유배생활을 비롯하여 문학활동과 생애 전반에 걸쳐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적 자부심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인물이다.
기나긴 이민족 압제의 그늘 속에서 시와 노래 그리고 가열찬 저항 활동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긍과 앞날을 일깨운 민족시인, 많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저력 그리고 두터운 자부심을 응원한다. 남녀노소 국민들이 함께 믿고 의지하는 걸출한 인물이 존재하는 나라의 잠재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