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충남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답작팀장

[금강일보] 고추, 양파, 옥수수 같은 타화수정 작물은 잡종강세 현상이 일어나는 F1 종자 자체를 이용하는데 부모보다도 훨씬 우세한 생육과 수량을 나타낸다. 이후 세대에서는 분리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종자로 쓰기 어려워 F1 종자의 가치가 높고 가격 또한 높게 형성된다. 그러나 자화수정 작물인 벼, 보리, 밀, 콩 등은 매년 채종하여 심어도 거의 같은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순도만 잘 관리한다면 종자를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어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작물들은 국가가 나서서 종자 개발 및 종자생산까지 책임져 주고 있다.
우리나라 벼 신품종 개발은 주로 전통육종법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손이 많이 가고 인력과 예산도 많이 투입된다. 처음엔 교배한 F1 종자 몇 알로 시작하지만 F2 집단은 수백 내지는 수천개의 개체를 전개시켜야 하고 F3 이후에도 몇백 개체씩 선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몇 개의 교배조합이 되면 벌써 몇 천평 이상의 면적이 소요가 된다. 또한 육종가는 우수한 개체를 찾기 위해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논을 돌아다녀야 한다. 또 수년에 걸쳐 만들어진 계통이 우수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기존의 품종과 수량, 병해충저항성, 품질 등을 비교해야 한다. 한곳에서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보통 세 지역에서 몇 년간 실시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포장 관리도 녹록지 않다. 땀 흘려 심어놓고 막 익어가는 찰나에 참새떼들이 들이닥친다. 특히 F1이나 초기 세대가 먹히게 되면 그 피해와 상실감은 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넓은 포장에 방조망을 쳐야 한다. 튼튼하지 않으면 태풍에 쓰러지기 때문에 말뚝을 단단히 박고 줄을 쳐야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쥐 피해도 만만치 않다. 쥐는 8월 이후 벼가 익기 시작하면 둑에 굴을 파놓고 부지런히 벼 이삭을 잘라다가 저장해 놓는다. 그 안에서 새끼를 낳고 몇 번 번식을 하면 일대는 완전 쥐 소굴이 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국가 벼 육종 기관에서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반영구적 방조방, 콘크리트 논둑 등을 설치하고, 동계에 첨단온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이나 민간영역에서 벼를 육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서 민간 육종회사가 출현해 ‘골든퀸3호’, ‘진상’등 밥맛이 우수하며 향을 가미한 독특한 품종을 개발했다. 경기도 화성시는 골든 퀸3호를 2032년까지 독자적으로 생산·판매할 수 있는 전용실시권을 80억 원에 사들였다. 앞으로 이러한 회사들이 더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동안 쌀은 상품이라기보다 식량안보, 환경보전에 대한 개념이 강한 공적영역으로 여겨져 왔고 벼 육종가는 통일벼 개발처럼 시대적 과제를 묵묵히 수행해 온 존재들이었다. 더구나 지속적인 쌀 소비량 감소, 재배면적 감소, 쌀값 안정이라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다소 어두운 명제하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1위의 재배면적을 자랑하는 품종인 신동진을 개발했던 육종가는 밥맛 좋고 수량 많은 품종을 만들었는데, 당시는 쌀이 많이 남는 시기여서 상부의 질타를 받아야 했고 육성자는 “좋은 거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신문지상에 석고대죄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중국에 갔을 때, 어느 옥수수 육종 교수를 만났는데, 종자를 판매하게 되면 판매금액의 일정 비율이 육성자한테 돌아간다고 했다. 만일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 재배면적이 크게 확대되면 고급 아파트와 자동차가 따라붙게 된다고 하였다.
그동안 충남에서는 다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몇 가지 특화 품종을 만들었다. 6월 하순에 꽃이 피고 7월 하순에 수확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품종인 ‘빠르미’를 개발했다. 추석 전 햅쌀 시장에 가장 먼저 출시되어 비싼 값에 팔렸다. 분얼이 흰색이거나 분홍색이고 이삭 색깔이 다양한 최초의 관상용 벼도 만들었다. 치유농업이나 농촌관광에 유용한 자원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장 굵은 유색미인 홍갈색찰 ‘왕자향’과 흑자색찰 ‘송알흑찰’을 만들었고 알이 굵은 중대립 향미인 ‘백옥향’과 중간찰 향미인 ‘향진주’도 개발했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탄소중립 등 만만찮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종자 뿐만 아니라 최고급 쌀도 만들어 수출도 해야 할 것이다. 치열한 지역간 쌀 판매 경쟁도 이겨내야 하고 민간과도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지방의 육종가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제도 등이 보완되고, 육종 기반 조성에 더 많은 예산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