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메시지, 멋진 디자인으로

[금강일보] 오래전 자동차 성능이 좋지 않았을 때는 뒷유리창에 ‘엔진보링’ 또는 ‘보링’이라는 글자를 큼직하게 써 붙이곤 했다. 요즘에는 엔진 오일 등만 제때 교체하면 보링을 할 일이 거의 없어 이런 문구를 보기 어렵다. 오래 주행하다 보면 엔진 피스톤과 링이 마모되어 이를 수리했다는 엔진보링 표식은 일종의 자랑이었다.

엔진보링이라는 문구가 사라진 뒤 다양한 표현이 주로 자동차 뒷 창문이나 범퍼, 트렁크 아랫면을 장식하면서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됐다. 이런 문구나 기호, 디자인 변천에서 사회의식과 감성, 문화의 흐름을 읽어본다.

젊은 층에서는 남녀의 이름 영문 첫 글자를 스티커로 붙이고 그 사이에 하트를 넣어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해있는 종교단체의 명칭이나 구호, 메시지도 자주 눈에 띄고 제대한 군대의 휘장, 재직 중인 기업 등의 홍보 이미지나 엠블럼을 부착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선거철이 되면 이동 유세 차량으로 활용되고 간혹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인사들이 어마어마한 공약을 앞뒤 유리창에 붙여놓아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이런 분들이 막상 정식후보로 등록했던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거품과 허세를 드러내는 이동수단으로 자동차가 쓰이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한 메시지 전달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장기간 노출이라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고 여과, 정제되어 표시해야 함에도 별생각 없이 재미 삼아 내거는 경우가 많아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법적으로 제재하는 규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한 대목이다.

자동차 뒷유리창에 붙이는 문구 가운데 실질적인 필요성이 높은 사례 중의 하나가 아이가 타고 있다는 표지판이다. 위급상황에서 아이를 먼저 구출해달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시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아이가 타고 있다는 간략한 문구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같이 무슨 의미인지 모호한 문장을 붙여놓은 차량도 적지 않다. 아이가 까칠하니 내 차 주변에서는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경고의 뜻인지는 몰라도 아이를 까칠하게 키운 것이 자랑은 아닐 텐데 그리 적절하지는 않아 보인다.

<사진>에서는 아이가 타고 있고 혈액형이 무엇이며 RH형은 어떠하다고 상세히 알려준다. 우리 사회 시민의식의 수준 향상과 자동차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힌 듯해 인상적이었다. 자동차 뒷유리창에 부착된 바로 이런 표지가 특수상황에서 신속한 대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이런 내용을 유리창에 붙박이로 새기기보다는 아이가 탑승하였을 때만 부착하고 평소에는 떼놓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사소한 문구와 부착물 하나가 운전자의 수준과 취향, 타인을 향한 배려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늘어나는 자동차 숫자만큼 의미 있고 멋진 소통의 메시지가 더 많이 눈에 띄었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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