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특성화로 지역소멸 위기 대응하자

▲ 문화재로 지정된  충북 영동 심천역. 2018년부터 ㈔한국생활연극협회 주최로 심천역 일원에서 생활연극축제가 열려 농촌지역에 생활예술을 뿌리 내리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인 충청도,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명칭은 그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번성했던 중심도시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충주·청주-충청, 경주·상주-경상, 전주·나주-전라 그리고 강릉·원주-강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다른 지역이 더욱 번창하게 되자 예전 명칭의 의미가 퇴색한 느낌이다. 부산과 대구, 대전, 광주, 춘천 등이 급성장하면서 지역의 수부도시로 자리 잡았다.

기초 자치단체 이름은 광역에 비하여 비교적 전통이 유지되고 나름 독특한 명칭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 도시 이름을 앞세운 브랜드화 작업은 다른 요소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 많은 중소 도시들이 ‘0000의 수도 00’등의 슬로건을 앞세워 홍보에 나서는데 굳이 수도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유한 전통과 특징 있는 이름으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전국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명칭 선택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자치구(區)단위를 제외한 시, 군의 이름 가운데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장 몇 곳을 꼽아본다.

은혜를 갚는다는 충북 보은(報恩), 기쁜 소식이 들려오는 경북 문경(聞慶),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전남 순천(順天),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바다를 다스린다는 경남 진해(鎭海)등이 먼저 떠오른다. 한자표기는 다르지만 끊임없이 솟아나는 풍요로움을 암시하는 ‘무진장’으로 불리는 전북 무주, 진안, 장수 등은 그 자체로 지역 이미지를 굳히고 마케팅의 귀중한 단서로 삼을만한 이름이다. 지리적 요소나 자연환경, 인문지리에서 유래한 이름에서도 각기 역사와 문화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될 만한 사연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각 시·군청 기획, 홍보 담당자들의 아이디어 창출을 기대해 본다.

지금처럼 배신과 외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횡행하는 세상, 키워주고 도와준 호의를 저버리고 태연히 등을 돌리는 세태에서 충북 영동(永同)군의 의미도 돋보인다. 인연과 의리를 소중히 여겨 영원히 함께 한다니 말이다. 영동군은 ’레인보우 영동‘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앞세우고 포도와 와인, 사과, 감 같은 특산물과 청정한 산과 물 그리고 영동출신 난계 박연 선생을 현양하는 국악의 이미지로 노란색을 더하여 일곱 빛깔 무지개를 떠올리는 도시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도시 명칭에서 비롯되는 브랜드전략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 특성화된 문화예술과 주민이 참여하는 연희(演戲)개념을 접목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경남 거창과 밀양, 경북 청도가 공연예술로, 전남 함평이 나비로, 강원도 정선이 아리랑 그리고 경기도 부천이 애니메이션으로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도시 이미지를 굳힌 사례를 꼽아본다. 지역인구를 늘이기 위해 주로 예산투여로 추진되는 지원책들은 한계가 있다. SNS 발달로 문화예술의 명소, 볼거리가 있다고 소문난 곳에는 거리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니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활동 중이거나 은퇴한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의 귀촌, 귀향, 지역정착을 적극 장려, 지원하여 그들의 경륜과 역량을 펼치도록 각기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면 농촌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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