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임기 2년, 시장과 임기 맞추기’ 추진
“기관장직 선거 전리품화 더 강화” 우려 제기
원칙·기준에 맞는 인사시스템 구축이 관건

대전시가 출자·출연기관장의 임기를 시장 임기에 맞추는 내용의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도를 개혁하기에 앞서 예상 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담보를 마련해야 한다는 거다.
◆ 해묵은 신·구 권력 인사 공방
권력교체기, 공공기관장 인사를 둘러싼 신·구 권력 간 갈등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정부든 지자체든 대부분 공공기관장 임기가 3년이라 정권교체기가 되면 임기가 아직 남아 있는 기관장들은 직·간접적인 사퇴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대전시의 경우 14개 출자·출연기관장이 있는데 대부분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다. 2020년 취임한 정재근 대전세종연구원 원장, 고영주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원장, 윤병문 대전디자인진흥원 원장, 심규익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김종남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 등은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다. 류철하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이사장, 김진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역시 민선 7기에 1년 연임이 결정됐다. 유미 대전사회서비스원장은 11월 19일까지, 문용훈 한국효문화진흥원장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정상봉 대전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임헌문 대전테크노파크 원장의 경우 2년 정도 임기가 남은 상태다. 새로운 시장과 전임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들이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임명권자와 임기 맞추기
시는 현재 대부분 3년인 출자·출연기관장들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2년을 못 채우더라도 시장의 4년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기관장 임기 종료되는 내용도 조례에 포함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 취임하는 시장과 기관장이 거취 문제로 갈등하는 일이 사라질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시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조례를 마련해 조만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시의 이 같은 조치는 이장우 시장이 취임 후 “새로운 시장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전임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줘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시정철학이 공유될 수 있어야 시와 산하 기관장이 보조를 맞춰 시정의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인데 현재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은 시의 행보를 살피면서 거취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과 기관장의 임기 불일치에 따른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방법론이 문제인데 현재 시가 추진하는 방법이 과연 능사냐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관장 임기와 임명 방식 등을 두고 ‘실적제’와 ‘엽관제’가 대립한다. 엽관제는 인사권자와의 정치적·개인적 관계를 기준으로 기관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국정·시정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인물들을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에 반해 실적제는 정치적 요인이 아니라 능력에 기반해 기관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현재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공운법)이 기관장 임기 3년을 보장하고 비위·경영실적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임기 중 기관장을 해임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이에 기초한다.
◆투명한 인사시스템이 관건
핵심은 이 같은 법리와 현실의 간극이다. 공공기관장 자리가 선거의 전리품이나 인사권자의 정치적 보상수단으로 활용되는 악습을 바꾸지 않으면 시장과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고 시장 임기가 끝나면 기관장 임기도 자동종료되도록 하는 방법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엽관제의 단점, 즉 정치적 고려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를 기관장으로 앉힌다든지 아니면 임명을 받은 기관장이 기관의 운영보단 시장의 눈치를 살피는데 더 신경을 쓰는 문제가 반대급부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엽관제나 실적제를 옹호하는 두 입장이 양립하지만 투명한 인사 시스템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정철학이 맞는 출자·출연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바람직하다”며 엽관제에 힘을 실으면서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관장을 걸러낼 인사 시스템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는 “임기 단축에 따른 출자·출연기관장의 잦은 교체는 공공기관 운영의 효율성만 저해한다”면서도 “임기를 단축하는 방안 등은 2차적인 문제고 중요한 건 능력과 자질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다. 임명 방식이나 절차에 대해 고민하고 원칙과 기준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민단체도 줄곧 주장해온 부분이다. 기관장의 독립성과 자율성, 책임성을 강조한 임기 3년 보장 체제에서도, ‘불편한 동거’를 막기 위한 임기 2년 체제에서도 투명한 인사 시스템이 공통의 전제 조건인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인사청문회는 요식행위로 치부되고 있고 의회(여당) 역시 기관장 인사에 있어선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만큼 이를 바로잡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간사는 “대전시의회에 시장이 추천한 산하기관장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간담회가 있지만 실제적 효력이 없다. 상위법 제·개정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시의 조례 제정이 추진될 경우 출자·출연기관장의 거래가능한 정무직화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신성재 기자 ssjreturn1@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