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간월도, 원두막 극장

1947년 연출가이자 배우인 장 빌라르는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뜰에서 세 편의 연극을 공연했다.
이런 과감한 시도로 연극은 음향, 조명장치가 잘 갖추어진 실내 공간에서 좌석에 단정히 앉아 관람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이후 아비뇽 페스티벌은 연극, 춤, 음악, 시낭송,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등 종합예술축제로 발전하여 매년 7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표적 공연행사로 자리 잡았다.
인구 10만 남짓한 소도시 아비뇽으로 몰려드는 수십만의 관객과 다양한 공연을 소화하려면 정규 공연장은 물론 학교, 성당, 운동장, 공터, 카페, 창고 등 아비뇽에 있는 모든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여 빽빽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공연장소의 다변화는 그로부터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灣)의 하나인 천수만과 이웃하고 있다. 생태계의 보고인 우수한 뻘과 품질 좋은 쌀 생산지, 철새도래지로서의 천수만의 명성에 힘입은 간월도 역시 명칭 그대로 달을 바라본다는 낭만적인 정취가 뛰어난 관광지로 이름 높다. 간월도에서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쐴 수 있다는 야외극장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다양한 관상수와 유실수가 울창한 ‘달과 페르소나’ 농원에 자리 잡은 원두막 극장은 야외 객석 주변에 탐스럽게 익은 포도, 대추를 따 먹으며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는 독특한 환경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2020년 8월 이곳에서 열린 천수만 국제 1&2인극 페스티벌은 예술 이벤트의 확산, 공연공간 다양화 그리고 수도권에 쏠린 문화 인프라의 균점이라는 의미에서 관심을 끌었다.
국내 8개 극단, 해외 3개 극단이 참여한 1회 행사는 노을 지는 서해를 바라보면서 바닷바람을 쐬며 아담한 공간에서 향유하는 문화 이벤트로 흥미로웠다. 코로나로 2년간 행사가 열리지 못했지만 이 공연장을 혼자의 힘으로 개발하고 가꾸어 가는 주요철 연출가는 1&2인극 페스티벌과 함께 앞으로 천수만을 배경으로 하는 대규모 국제 연극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중서부 작은 마을 퓌 뒤 푸에서 1978년 이후 지금까지 봄부터 가을 시즌 동안 주말에 공연하는 총체극 ‘시네세니’는 프랑스 혁명 당시 이 지역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장대한 스케일로 펼치는 야외공연이다. 특히 주민들의 공연참여로 지역경제를 크게 끌어올린 성공 사례로 세계적인 벤치마킹의 교과서로 꼽힌다. 간월도의 경우에도 천수만을 아우르는 뛰어난 입지조건과 참신한 기획력이 결합되어 자연 속에서 공연을 즐기는 미래지향적인 문화콘텐츠로 지역에 뿌리내리면 수도권으로 쏠리는 문화예술의 편중 해소라는 해묵은 과제의 참신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