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대한 높은 경각심 필요하다

1964년 제작된 영화 ‘아편전쟁’(김수용 감독)은 1839년 시작된 중국과 영국간의 전쟁을 주제로 삼았다.
1960∼70년대에 제작된 우리 영화는 멜로드라마에서 액션물, 사극, 희극, 공포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마를 다루었지만 국교 수립도 하지 않은 다른 나라 근대사를 모티브로 삼은 경우는 드문 사례였다.
희미한 기억으로는 주인공 임칙서역을 맡은 신영균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했으며 중국건축물을 꽤 많이 세트로 만들어 찍었다.
영화포스터에는 제작비 3800만 원, 등장인원 연 15만 명 그리고 중국 건물 200동이 사용되었다는 광고 문구가 들어있다.
요즈음에는 100억 원 제작비도 그리 많은 액수가 아니겠지만 근 60년 전 3800만 원의 규모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영국은 중국에서 차(茶)를 수입하였는데 결제수단인 은(銀)이 쪼들리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여 은을 다시 손에 넣는 악행을 저지른다.
임칙서가 파견되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자 영국은 무력으로 중국을 위협하여 결국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이 체결되고 그때부터 중국에 서양 여러 나라가 무소불위의 힘으로 진출하면서 갖가지 이권 쟁취, 주권침해 행위가 이어지게 되었다.
영화 ‘아편전쟁’은 신영균, 김지미, 최무룡 등 당시 톱스타들이 출연하여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런 영화의 제작의도는 국민계몽 차원에서 강대국의 도를 넘는 침탈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자존,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취지로 이해되었다.
무력을 앞세운 막무가내식의 통상개방과 국토 양도 요구 앞에 당시 중국이 당했던 굴욕적인 자존심 훼손은 동남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식민지 체제를 오랫동안 구축하게 되었다.
자칫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부국강병’이라는 슬로건이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자존독립을 지키고 외세의 부당한 개입을 막는 최선의 방책임을 역사는 교훈으로 일러준다.
#. 아편 등 주로 식물성 원료로 제조되던 마약류가 20세기에 들어서자 화학성분을 주로 이용하면서 훨씬 광범위해지고 중독성 역시 강력해졌다. 오랜 기간 이른바 마약청정국으로 인식되던 우리나라도 이미 그 자부심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류는 1295.7kg으로 2020년 대비 4배, 2019년에 비해서는 8배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20대, 30대 젊은 세대와 여성층으로 급속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데 20∼30대 마약사범 비중은 2018년 40.6%에서 56.8%로 상승했다.
인터넷을 통한 거래, 마약류 취급 의료기관의 소홀한 관리 등으로 인한 도난, 분실 사례를 포함하여 전반적인 관리 소홀 또한 심각하다.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 6000명 이상으로 그중 300명 정도가 치료를 받았을 따름이고 마약치료 보호기관 21곳 중 8곳만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 숫자가 20이 넘으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데 우리나라는 작년에 이미 32를 넘어섰다.
마약김밥, 마약 떡볶이 그리고 마약옥수수처럼 마약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상투적인 접두사로 쓰이면서 치명적인 위험을 경고하는 대신 강렬한 유혹, 호기심을 이끄는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다.
마약이 지닌 파멸의 속성보다 자극적인 쾌락, 습관성 중독성향이 우선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얼마 전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 권은희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출되었다.
‘마약…’을 앞에 붙여 아무 생각 없이 쓰이고, 광고로 활용하는 언어생활, 젊은 세대들이 마약의 위해, 범죄의 심각성을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언어사용에 사회적인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법률개정안 취지에 동감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