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 외 치료 방법 없다” 글로벌 문제로 대두
지리적 중간지역 충청권이 한반도 확산 분수령
지자체·산림당국 긴장감 속 예찰·방제 안간힘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은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다. 재선충은 소나무·잣나무·해송 등에 기생해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으로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에 기생하며 나무에 옮는다.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항구를 통해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본은 1905년 나가사키현에서 최초 발생했으며, 특히 한국전쟁 당시 미국 남부지방의 군수물자와 함께 들여와 피해가 커졌다는 게 중론이다.
◆ 1905년 일본 나가사키현 이후 중국·대만·유럽 등으로 확산
재선충병은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는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지역은 재선충병에 대해 면역이 있는 리기테다 및 리기다소나무가 발육하고 있어서다. 이후 1982년 중국 남경지역에 발생했고, 인근 대만은 1982년에 피해가 보고됐다. 북남미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면역 소나무가 있다지만 미국 1934년, 캐나다 1985년, 멕시코는 1993년에 감염목이 나왔고, 이들과 항로를 통해 활발히 교류하던 포르투갈도 1999년에 재선충이 발견돼 스페인 등 유럽 확산의 진원지가 됐다. 특히 일본과 대만은 초기 대응에 실패해 소나무가 거의 전멸했다.
이처럼 재선충은 항구를 통해 확산돼왔다. 1905년 최초로 재선충병이 보고된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도 항구지역이다. 미국에서도 들여온 나무박스가 소나무 재선충병의 유입 경로였다. 1999년 유럽 최초로 감염이 발생된 포르투갈 세투발지역도 대항해시대를 개척한 리스본과 한 시간 거리인 항구도시로, 유전자 분석 결과 중국의 목재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듬해 포르투갈 정부는 재선충 대응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가동해 발생지역 3㎞ 반경의 소나무를 모두 벌목했으나 미흡한 초기 대처로 스페인 등 유럽연합(EU) 확산의 책임지역이 됐다.
한국도 지난 1988년 항구도시 부산에서 최초로 발생했는데, 동물원 조성을 위해 일본에서 원숭이를 담아온 나무 케이지 안에 매개충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금정산에 올라탄 매개충은 한반도 재선충 확산의 씨앗이 됐다. 소나무 재선충 연구자는 “소나무 재선충병은 가축전염병과는 달리 초기에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가축전염병은 대륙을 넘나들며 인류의 생명을 앗아갔지만 재선충병 소나무 고사되는 것이라 위기감이 적었다”라며 “하지만 일본과 대만 등지의 소나무가 초토화되고 점차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까지 확산 기세를 보이면서 방제 노력이 이어졌고, 벌목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글로벌 문제로 대두됐다”고 설명했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국제적인 저탄소 정책에 힘입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50년간 자란 나무 한 그루의 가치가 3400만 원어치 산소와 3900만 원어치의 물을 생산하며 대기오염물질 흡수 효과만 6700만 원으로 환산되는 것으로 분석돼서다. 참고로 32그루의 30년생 소나무는 17만 7286ℓ(5톤 탱크로리 차량 22대분)의 이산화탄소를 없앤다. 즉, 소나무를 잘 보호하며 키워낸다면 국내 탄소 중립을 위한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다.

◆ “항구·공항 있는 지리적 중간지역 뚫리면 걷잡을 수 없어”
1988년 항구도시 부산에서 최초로 발생한 한국은 소나무 재선충병 위기 국가다. 국내 산림의 30%가 소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 소나무가 고사할 경우 생태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잦아들었던 소나무 재선충병이 올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올해 피해목만 38만 그루로 전년 대비 22.6% 늘어났다. 특히 재선충병이 처음 당도한 영남지역은 가장 심각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내륙과 해안을 가리지 않고 재선충병이 창궐하고 있다. 경기와 강원지역도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충청지역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올해 4월까지 대전·세종·충남지역 내 감염목이 346그루가 발생했다는 통계적 안심인 것이다. 산림업계 관계자는 “보통 감염목 수는 벌목 거리인 20m당 한 그루만 계산한다. 피해목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세세히 개수를 세면 영남과 경기, 강원지역의 피해목은 가히 크고 충청권도 적은 수치는 아닐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학계에서는 이미 충청지역의 소나무 재선충병이 크게 뚫린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한다. 지리적 특성상 사방이 모두 접해 있어 재선충병이 창궐하는 것은 시간 싸움에 불과해서다. 더불어 충청권 방제가 특히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선충병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충청도는 재선충병의 투입 경로가 되고 있는 항구와 공항이 있는 데다가 산지 어디로든 확산 경로로 삼을 수 있는 지리적 중간지대라서 재선충병 확산세가 커질수록 한반도 피해도 늘 수밖에 없다. 국내 방제는 충청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만약 영남과 같은 확산 기세가 충청에서 발생하면 다른 지역들이 아무리 방제 노력을 쏟아도 재발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