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증정 답신모음집 ‘다시 사연을 모아’

#.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 각 분야 변화에 대한 예측이 쏟아져 나왔다. 타당해 보이는 예상도 있었고 상식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조망 역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는 설렘 속에 그런대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적중하거나 근접한 전망도 많지만 생각보다 진척이 더딘 변화 역시 상당하다. 특히 IT기술 발전에 힘입어 빠른 변화추세와 함께 익숙한 일상의 관례나 습성으로 인해 바뀌어 가는 속도가 느린 분야 또한 적지 않은 까닭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 e-book, 전자책이 종이서적 시장을 크게 잠식하여 20년 정도 지나서는 약 20∼30%정도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휴대에 편리하고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전용 단말기 하나에 어마어마한 책을 저장할 수 있다는 매력과 이점이 그러한 예측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수치를 크게 밑돌며 종이책은 내용이 나날이 다양화되고 디자인이나 제작수준에서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문화상품으로 종전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어 가고 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모니터 또는 전용 단말기로 읽는 편리한 독서습관도 매력적이지만 종이책을 손에 쥐고 실물감 있게 책장을 넘기는 오랜 습성, 읽고 난 뒤 책장에 꽂아두고 독서의 기억을 상기할 수 있는 전통적인 관행의 힘이 아직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완만하지만 전자책 형태로 도서 출판, 유통, 소비채널이 바뀔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 기반 환경에 익숙한 지금의 20∼30대가 강력한 소비력을 갖추게 될 얼마 후에는 이런 책 소비행태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 책을 내기는 쉽고도 어렵다. 출판사의 기획과 청탁으로 모든 과정이 출판사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 그리고 이른바 자비출판, 저자 비용부담과 출판사 명의로 펴내는 경우로 구분하는데 저자의 지명도나 책의 내용이 일정량 판매를 확신할 수 없을 경우 주로 자비출판이 이루어진다. 근래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의 출판지원금이 상당부분 증가하여 예전에 비하여 필자부담 출판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다. 일부 출판사에서는 지원비 신청업무를 대행해 주면서 출판을 맡는 체제로 운영되어 온라인을 통한 이런저런 구비서류 작성이 수월치 않은 저자들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판된 책은 자비출판의 경우 저자가 지인들께 보내는 증정이 상당비율을 차지한다. 어렵사리 펴낸 책에 정성스럽게 친필서명을 하고 우편료까지 부담하여 발송하는데 책을 받고 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형식 역시 디지털 시대 추세에 따라 크게 변화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책을 받으면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감사의 말과 책을 읽은 간략한 덕담을 적어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 후 이메일이나 보다 다양한 SNS로 간략하게 인사를 전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전화를 통하여 대화로 잘 받았노라고 회신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받았다는 답을 보내는 경우는 그런대로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아무런 기별을 보내지 않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올해 구순이 된 이범찬 교수는 그간 자신이 보낸 저서에 대한 다양한 답신을 모아 ‘다시 사연을 모아’(소소리 발행)라는 독특한 책<사진>을 펴냈다. 저서를 보낼 때마다 받은 전화, 답신을 일일이 기록한 이 책은 책을 받고도 제대로 감사의 인사조차 전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즈음 작은 관심과 성의의 필요성, 책을 펴내는 저자가 느끼는 보람과 기쁨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제각기 다양한 형식과 문장으로 전하는 소통의 사연을 읽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날로그의 온기가 살아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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