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CEO가 다 뒤집어쓰는 건 안돼”
경영위기 지속에 안전관리 여력 부족
노동계 “법 강화해 실효성 담보해야”
전문가 “노사 인식 개선 선행 필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1년을 맞았지만 현장에선 노·사 가릴 것 없이 법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업은 너무 가혹하다고, 노동계는 너무 무르다고 아우성이다.

◆ 법 자체가 두렵다
중소기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최고경영자(CEO)만 처벌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사고까지 1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실질적인 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고 평가한다. 안전 규정 위반시 사업주만 처벌하고 근로자에 대해선 이렇다할 제재수단이 없는 데다 중소기업은 법 이행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중대재해법상 단 한번의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사업주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여기에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4중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

코로나19발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 대비책 마련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함께 전국 1035곳(중소기업 947곳, 대기업 88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기업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77%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대전지역 기업단체 관계자는 “전문인력 인건비 지원과 시설개선비 지원 등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기업 현장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한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의식 제고를 위한 지원이나 법 조항 없이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사용자에게만 떠넘기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더욱이 산업안전보건법과 겹치는 부분도 적잖아 혼선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자율성 보장 필요
기업들은 정부가 법 보완과 함께 안전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하고 안전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대기업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ESG경영 및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으로 응답자의 40%가 중소기업(50~299인)을 지목했다. 이어 중견기업(300~999인) 33.3% 대기업(1000인 이상) 26.7% 순이다. 더불어 중소기업의 77%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 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응여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47.6%)이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했다.‘법률 자체의 불명확성’(25.2%), ‘과도한 비용 부담’(24.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기업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부정적 영향’(63.5%)이 가장 높았다.

대전 대덕구 한 화학제품제조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 부진이 계속되고 고금리와 고물가 기조 속 경기전반이 침체된게 요즘이다. 자금 경색도 심화되고 사업에 투자할 자금도 부족한 실정인데 안전 부문에 추가로 사용할 재원이 부족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을 대상으로만 책임을 물으려고 하니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소기업 입장에선 챙겨할 것은 늘어난 반면 경영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 때문이다. 더욱이 작업장 내 자동정지 시스템 등 안전관리 장비를 설치해놓더라도 근로자의 안전의식 결여로 인해 발생한 사고 책임을 경영자가 떠안을 수 있어 전전긍긍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전 유성구 한 물류업체 대표는 “기업이 최대한 안전시설 마련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노동자의 안전의식이 결여돼 있다면 사고는 발생한다. 그 책임까지 경영자에게 물으면 누가 사업을 할 수 있겠나. 강제적인 법 집행보다는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름뿐인 중대재해처벌법
노동계는 중대재해 발생 1호(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 기소 1호(두성산업 집단 독성 간염) 사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이 정한 경영책임자 등 처벌 대상 범위를 사법기관이 사례를 통해 가늠케 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해 1월 29일 발생한 삼표산업 사건은 해를 넘겨 여전히 수사단계에 머물러 있다. 5개월간 사고를 조사한 고용노동부가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넘겼으나 검찰은 삼표산업의 오너까지 소환 조사하며 수사가 길어지고 있다.

법 제정 취지와는 달리 조사·수사·재판이 길어지면서 산재 예방 효과도 크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대전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256명인 데 비해 기소율이 현저히 낮다. 심지어 현재 처벌이 확정된 사건도 없다. 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제대로 된 처벌을 한 이후에 중대재해처벌법을 평가해야지 처벌이 1건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법 시행 후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안전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실질적인 사고 예방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법 시행 후에도 여전히 떨어지고, 부딪히고, 무너지고 또는 화재나 폭발로 수백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건 법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대전의 한 노동단체 관계자는 “사업장 내 위험요소를 알렸는데도 개선 조치가 없어 사고가 났다면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가장 위험한 작업장부터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현행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적용을 안 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유예조치 한 만큼 갈길이 멀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대전지부 관계자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작업현장에서 숨지는 근로자들이 여전히 많은만큼 실효성을 담보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공감대 형성, 양보·합의 절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대책 마련과 이를 위한 노사 양측의 양보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공감대는 형성된 만큼 실질적으로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론 모색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거다. 또 기형적인 원·하청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남형민 세종노사연구원 노무사는 “가장 중요한 건 산업재해 자체를 막는 건데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현장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최우선이다. 당분간 산업 주체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한 진통이 이어지겠지만 상호조율을 통한 합의에 도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충청지역 한 대학 안전공학과 교수도 “중소기업계에 정착된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를 개선해 납품기업들이 시간에 쫒기거나 무리한 업무를 강행하지 않도록 납품단가연동제 등 중소기업 경영지원을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박정환 기자 pjh@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