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를 원문으로’
목원대 역사스터디 늦깎이 청강생들
학생뿐 아니라 주민에게도 문 열어
배움의 열정 하나로 십수년째 참여
어려운 한문 알아가는 재미 ‘쏠쏠’

▲ 지난 31일 목원대 사기 스터디에서 왼쪽부터 김춘교·양연호·김춘자 씨가 수업을 듣고 있다.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당대의 경험과 사상을 복합적으로 압축한 인간학 교과서다. 목원대학교에선 만학도들이 52만 6500자, 130권 분량에 달하는 사기를 원문으로 강독에 나서 눈길을 끈다. 김춘교(74)·김춘자(72)·이광규(69)·양연호(60)·한경애(58) 씨가 그 주인공이다.

동양에서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쓴 이를 꼽으라고 하면 열이면 열이 사마천을 꼽는다. 그가 남긴 사기는 역사학도에게조차 쉽지 않은 책이다. 우리말로 풀이한 책을 나름 역사학도인 젊은 학생들도 보기 벅찬 마당에 만학도들은 역사학과 도중만 교수가 21년째 운영하는 사기 스터디를 청강하며 배움엔 끝이 없다는 소신을 실천하고 있다. 학원강사 한경애 씨는 “수업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며 “스터디를 통해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이 즐겁다”고 웃어보였다.

젊은 학생들도 사기의 원문을 해석하기란 영 낯설고 어렵다. 목원대에 정식으로 입학한 적은 없지만 10여 년 넘게 스터디를 청강하는 만학도들은 오죽하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집중력으로 공부해야 하는 탓에 비록 수고롭지만 연륜은 무시 못 한다더니 그 어려운 한문을 막힘없이 줄줄 읽어나가는 모습이 새삼 경이롭다. 김춘자 씨는 “해석이 너무 어렵지만 교수님이 번역해주는 것과 맞는 날엔 그렇게 기쁠 수 없다”며 “어렵고 복잡한 한문일수록 흥미롭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뿌듯해했다.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가 있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스터디 초반 졸음 공격에 무릎 꼬집으며 버텨온 만학도들은 사기를 통해 가치관, 인생관을 돌아보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요양보호사 이광규 씨는 “중국사를 연대별로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 스터디를 계속하고 있다”며 “많이 배워 중국 서적 번역 봉사를 해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서예가 양연호 씨도 “서예를 하면 한자를 화선지에 옮기는 수준이었는데 글에 담긴 의미 등을 제대로 파악해 쓰고 싶었다”며 “전공생들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학문은 공적으로 가르치고 공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스승 정재 권정원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 깊숙이 새긴 도 교수에게도 오랜 시간 함께한 만학도들은 애틋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학점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토론하는 지적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인생관을 심어주자는 스터디의 근본 취지를 이들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게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도 교수는 “사마천의 사기는 정사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며 “사기를 제대로 탐구해 인생관과 목표, 가치를 바른 방향으로 설정하며 실천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복선영 수습기자 bo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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