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대전세종충남본부 처장

보행자 횡단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횡단보도입니다. 교통사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신호교차로에서 황적색 차량신호에 급횡단 또는 급회전 행동경향이 보행자의 횡단안전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차량의 접근속도를 억제하기 위해 신호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전환하는 추세입니다.
제9차 국가교통안전기본계획에서 정부는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의 구축을 위해 보행자의 횡단안전성 및 편의성을 도모하는 전략으로 중앙보행섬, 내민보도, 시케인 등 교통정온화시설 설치를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당진시는 전국 최초로 횡단보도 무장애존 표준모델을 도입하였고 금산군은 전국 최초로 중앙보행섬 실증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교통안전 선도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보행자의 횡단에 대한 적시 인지가 곤란하거나, 위험요인이 달리 제거되기 어렵거나, 특별한 조치를 요하는 보행자(시각장애인, 휠체어이용자)가 있거나, 환경피해(교통소음, 미세먼지)를 줄일 필요가 있는 경우 도로관리청이 차도에서 보행자, 자전거, 전동휠체어 등 교통약자의 통행우선권을 교통정온설계로 보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행자, 자전거 등 교통약자의 횡단행동은 지점 단위가 아니라 면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통안전 선도국가에서는 30존에 보행자,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이 언제든지 횡단할 수 있도록 통행우선권을 보장하고 중앙보행섬, 시케인 등 교통정온설계로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의 공간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는 보호구역에 보행자, 노인, 장애인 횡단을 억제하는 펜스, 중앙분리대, 펜스 등 교통약자의 동선 인지를 방해하고 자동차의 편의성을 높이는 시설이 보행안전시설로 둔갑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과거 유산인 도로교통 시설에서 탈피하여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인 교통정온화시설의 확대와 다각화를 모색할 때가 되었습니다. 유럽연합은 도시지역도로는 도로 설계가 아니라 가로 설계의 다각적인 접근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도로가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운전자에게 제공하고 위해 차도에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문양을 도색하는 추세입니다(참고. 바르셀로나 superblocks).
국내도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발행한 안전속도 5030 설계운영 매뉴얼에 가로 설계의 다양한 시도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자동차 중심 교통체계에 투입되었던 과거의 도로교통시설은 더 이상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보행자 중심 교통체계는 보행자의 anywhere, anytime 횡단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의 개발과 보급을 요구합니다.
노인 횡단사고의 대부분은 접근 차량의 속도를 과소평가하고 거리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으로 위험도가 높은 편입니다.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횡단의사를 운전자에게 적극 표현하여 차량 정지를 유도하는, 비언어적 도로교통의 언어적 소통형식의 도입을 위해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시행하는 보행자 수신호 문화운동(“차를 만나면 아이언맨처럼 손으로 표시해요”)에 시민사회가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