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 창동 양말단지

“양말은 정장용과 일반용이 있는데, 정장용은 일반용보다 발목이 긴 것으로 그림이나 상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이다. 양말은 양복바지, 구두와 같은 계열의 색상을 신는 것이 무난하다. 기본적으로 정장 양말의 색은 검은색이지만, 양말의 색은 바지 색보다 짙은 색상이나 같은 색 양말을 신는다.”

매너 서적에 나오는 양말 관련 언급은 이렇듯 비교적 간결하다. 양복과 구두 항목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짧은 설명은 양말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늘 눈길이 비껴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침에 출근, 외출할 때 챙겨 신고 저녁이나 밤에 귀가하여 벗을 때까지 양말은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증인이 된다. 대부분 여러 켤레를 준비하고,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까닭에 존재감이 덜한 듯하지만 출근 시간에 쫓길 때 마침 새 양말이나 빨아 놓은 양말이 없어 부득이 빨래통에 던져 넣은 양말을 다시 신고 나가야 했던 곤혹스러운 기억도 떠오른다. 촉감 좋고 발에 꼭 들어맞는 양말은 출근길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양말 가격은 요즈음 물가고를 비껴가는듯 여전히 저렴하다. 물론 고급 양말도 있긴 하지만 싸게 살 수 있는 양말의 경우 한 켤레에 대략 1000여 원으로부터 2000원 안팎이다. 특히 전철역상가, 지하상가에 즐비하게 진열된 갖가지 양말은 별다른 브랜드는 없지만 직조나 디자인이 수준급이다. 예전에 국제, 용신, 무등, 가정, 길표 양말 등 이른바 브랜드 양말이 멋진 포장으로 케이스에 넣어 상당한 가격으로 판매되었는데 이제는 고가 제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업체 이름을 달지 않고 유통된다. 연간 1조 2000억 원에 이른다는 양말 산업의 절반가량을 서울 도봉구 창동 일대 양말단지에서 생산한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창동 주택가 지하에 자리 잡고 200여 업체가 나름의 노하우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양말을 만들어 낸다.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또 미련 없이 버리는 양말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 숱한 손길이 거쳐간다. 인력난과 원가절감 등의 이유로 기업주 대부분이 직접 생산 작업에도 참여하는데 염색을 거친 원사를 들여와 편직 과정에서 1차 제품이 통 속에 툭하고 떨어진다. 수십 개 바늘이 뜨개질하듯 짜낸 양말, 이때 형태는 토시 모양으로 이후 코를 꿰매는 봉조 과정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봉조밥이라고 부르는 꽁다리 부산물이 발생하는데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친환경기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아 창동 양말단지에서만 하루 차 한대 분량이 배출된다고 한다. 권투 샌드백 내부를 채우는 용도 등으로 재활용된다지만 이런 사유로 친환경을 앞세우는 수출 판로 개척에 장애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앞 코를 꿰맨 양말은 스팀샤워 증기작업을 거쳐 <사진> 라벨과 코핀을 붙이고 포장, 출하된다. 이 단계마다 주로 여성 근로자들의 섬세하고 재빠른 손길을 거치는데 노동집약적, 가내수공업 차원의 공정은 자동화, 기계화 추세로 치닫는 이즈음, 아날로그 분위기를 지켜가는 제조업으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기계의 힘을 빌려도 사람 손을 꼭 거쳐야 하는 양말제조업은 도봉구 창동 일원 주택 지하나 상가지하 공간의 작업장에서 오랜 세월 양말제조에 애정을 가진 숱한 인력의 손길로 이렇게 유지 되고 있다.

아직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지만 도봉양말협동조합(이사장 강대훈)을 비롯한 뜻 있는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부가가치 향상에 힘을 모으고 있다. 양말거리 조성을 위한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도봉구 일대 관광지, 맛집을 연계한 양말 관광도 구상중이라고 한다. 업체 중에는 양말패션쇼를 열고 양말모델을 채용하는 등 전향적인 경영태세를 보이는 곳들도 있다. 양말이 단순한 보조의류 차원을 넘어 개성을 드러내고 패션의 완성을 이루는 핵심 포인트로 자리 잡을 날을 기대해 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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