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로 꼽히는 항구도시 나폴리는 인구 190만 명으로서 이탈리아 제2의 도시이자 캄파니아(Campania)의 주도(州都)다. 그런데, 나폴리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되었지만, 나폴리에서 포지타노(Positano)에 이르는 해안도로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세계 각지에서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지다. 특히 지중해를 향해서 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어있는 오래된 집들과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 건조지대여서 일년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할 수 있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10분이면 갈 수 있고, 나폴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서 소렌토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폼페이를 여행한 우리 가족은 폼페이에서 소렌토행 민간열차를 탔는데, 소렌토까지 약 30분 정도이고 요금은 편도 2.2유로다. 민간회사가 운영하는 사철(私鐵)이어서 유레일패스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열차는 일반 열차의 약 1/3 정도 크기인데, 승하차 공간과 객실 사이에 칸막이가 되어서 승하차할 때 문이 열리더라도 객실 안으로는 외부의 공기가 차단되는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비록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밖으로 전개되는 농촌의 풍요로운 모습과 4m가 훨씬 넘을 것처럼 무성한 억새가 그림 같은 들판, 아름다운 커브와 높다란 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르는 터널들을 예술 작품처럼 만든 것에 넋을 잃었다. 특히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학생들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는데, 비너스 조각처럼 아름답고 티 없이 꾸민 얼굴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폴리 항에서 페리를 타면 소렌토까지 약 40분쯤 걸리고, 맑고 푸른 지중해를 항해하면서 해안선 절벽에 마치 제비집 매달리듯 붙어있는 수많은 중세의 호텔과 레스토랑들을 덤으로 구경할 수 있어서 좋지만, 우리는 폼페이에서 출발했으니 어쩔 수 없이 민간열차를 탔지, 소렌토에서 지중해의 작은 섬 카프리섬(Capri)을 관광하려고 나섰고, 카프리섬에서 돌아올 때는 나폴리 항으로 돌아와서 결국 코스만 바뀌었을 뿐 지중해 여행은 한 셈이다.



소렌토는 기원전부터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시레나(Sirena)라고 불렀는데, 로마인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마녀 세이렌(Siren)이 지중해의 작은 섬 사이레눔(Sirenum)에서 산다고 하여 이곳을 사이렌늄이라고 했다. 소렌토 주변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어디선가 아름다운 여인의 달콤한 노랫소리에 유혹되어 뒤돌아보다가 가파른 해안의 암초에 부딪혀 난파당한다는 전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독일 라인강에서 전해오는 독일민요 ‘로렐라이(Die Lorelei)’언덕과 비슷하다. 시레나는 오늘날 신호·경보 등의 의미인 영어 ‘사이렌(Siren)’의 어원이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이후 사이레늄은 수렌툼(Surrentum)이라고 불렀는데, 수렌툼은 7세기까지 공작의 자치령이었다가 1137년에 노르만족의 침략을 받고 시칠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소렌토는 우리의 시골 읍만큼 작은 인구 약 2만 명의 도시여서 기차역에서 소렌토의 중심지인 타소 광장까지는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타소 광장 한 가운데에는 소렌토가 자랑하는 이곳 출신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의 동상이 있고, 광장 주변에는 호텔, 레스토랑 등 여행자들의 편의시설이 몰려있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이곳보다는 비록 비좁고 낡았어도 수백 년 전부터 해안가 절벽 중간에 제비집처럼 지은 작은 별장과 호텔들이 나폴리 항과 푸른 지중해를 만끽할 수 있게 꾸며진 곳을 더 선호한다. 숙박료도 최신식 호텔보다 훨씬 비싸다.

소렌토는 가파른 해안 절벽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서 건물들도 지중해를 향해서 마치 경기장의 계단식 관중석 같다. 소렌토에는 대주교관구를 비롯하여 성당과 14세기에 건축된 아름다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등이 있고, 코레알 레디테라노바 박물관은 캄파니아주의 장식미술품과 중세의 조각·그림 및 고전양식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집집마다 돌로 쌓은 낮은 담장과 담장 위를 장식한 이름 모를 붉은 꽃 화분과 넝쿨들의 장식은 매우 아름다워서 2010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산간 도시 할슈타트(Hallstatt)를 보기 전까지는 내가 돌아본 세계의 수많은 도시 중 소렌토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경사진 도로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면 소렌토 항과 해수욕장이 해안가에 길게 늘어져 있는데,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는다. 그것은 지중해 바닷속까지 모두 석회암 지대여서 바다에도 수초가 자라지 않고, 물고기도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닷속은 마치 잘 꾸민 인공 수족관처럼 투명하고, 주민들도 대부분 어업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람선이나 요트 대여, 숙박업으로 생활한다. 또, 해수욕장에는 모래사장도 없고, 철 구조물로 만든 부교(浮橋)에서 다이빙하거나 수영. 보트 등을 타고 즐기는 것이 고작인데도 여행객들은 절벽에 붙은 이색적인 호텔에서 지중해 풍광을 더 즐긴다.

소렌토는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노래 제목만은 기억하고 있는 이탈리아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의 본고장이라는 것도 소렌토에 가서야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 민요도 사실은 바닷가이지만 고기도 잡을 수 없는 젊은이들이 돈을 벌러 멀리 떠나간 뒤에 소식이 없자, 소렌토 처녀들이 애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애절한 노래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