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나폴리의 가장 번화가인 움베르토 1세 갤러리에서 트렌토 광장을 지나 나폴리에서 가장 넓은 피아차 플레비시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까지는 도보로 약 5분 거리다. 플레비시토 광장은 산 프란체스코 파올라성당(San Francesco di Paola)과 레알레 궁전(Palazzo Reale)의 열주(列柱)에 둘러싸여 있는데, 나폴리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다.


파올라성당의 내부는 로마의 판테온과 매우 흡사한 구조로 지어졌고, 천정은 뻥 뚫려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친형 조지프(Joseph: 1808~1813)를 나폴리 왕으로 삼았다가 부관이자 처남인 조아생 뮈라(Joachim Mura: 1808~1815)에게 왕위를 넘기게 하고, 조지프를 스페인 왕(1808~1813)으로 옮겼는데, 나폴리 왕 뮈라기 1809년 궁전 앞에 있던 교회, 수도원, 저택들을 모두 철거하고 광장을 조성했다. 그 후 아라곤 왕 카를로스 1세가 앙주가를 물리치고 나폴리를 점령한 뒤, 3년 동안 카스텔 델로보 성을 개축한 뒤 수도 페레르모에서 왕궁을 옮겼다. 그리고 페르디난드 1세(1816~1825)는 실추된 왕권의 위상을 세우기 위하여 나폴리 왕궁으로 이전한 뒤, 광장 양쪽에 아버지 카를로스 3세(1734~1759)와 자신의 동상을 나란히 세웠다. 아라곤 왕 펠리페 5세와 이사벨 여왕의 맏아들로 태어난 카를로스 3세는 나폴리 왕이 되었다가 이복형 페르난도 6세가 죽자 스페인 왕(1759~1788)이 되면서 아들 페르디난드에게 나폴리 왕위를 넘겨주었다. 플레비시토 광장에서는 지금도 나폴리의 공식행사나 문화행사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 판매점이 많다.



1602년 아라곤 왕 때 건축된 레알레궁의 전면은 그리스 건축양식으로 장식하고, 뒷면은 이슬람식 돔 형식인데, 1734년 나폴리 왕국(1735~1816)과 두 시칠리아 왕국(1816~1861)이 통치하던 부르봉 왕조 때부터 왕궁으로 사용하여 나폴리 왕궁이라고도 한다. 마치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의 열주를 연상하게 해주는 레알레궁의 벽면에는 바이킹인 노르만 왕조의 로저 왕부터 이탈리아를 통일한 에마뉘엘까지 여덟 명의 왕 석상이 조각되어 있다. 궁전 내부는 겉모습과 달리 베르사유궁을 모방하여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여 부르봉 왕가의 과거를 보여준다.
1294년 가톨릭 왕국 나폴리에 세운 나폴리 두오모 성당은 나폴리의 수호성인 젠나로(San Gennaro)를 모신 성당이다. 본래 두오모(Duomo)란 ‘반구형 지붕’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로서 11세기부터 200년 동안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가 벌인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에 전파된 이슬람 양식으로서 이후 주교좌가 있는 ‘대성당’을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도시국가였던 이탈리아에는 주요 도시마다 ‘두오모 성당’이 있지만, 그중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밀라노 두오모 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나폴리 두오모 성당의 예배당에는 흉상 안의 유리병에 성 젠나로의 머리뼈와 응고 혈이 있는데, 응고된 혈액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9월 19일에 액체로 변해서 이날을 '성 젠나로 기적의 날'이라고 한다. 만일 응고된 피가 액체로 변하지 않으면, 그해에는 도시에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비공개하므로 성당에 입장해도 볼 수 없다.
나폴리항 길 건너에 있는 거대한 카스텔 누오보성은 나폴리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성으로서 카스텔누오보는 라틴어로 '새로운 성'이라는 의미이다. 1266년 프랑스 앙주 가문이 나폴리 항을 조망하기 쉽도록 비탈진 지대에 누오보 성을 쌓았으나, 아라곤 왕 카를로스 1세가 보르봉의 앙주가를 물리치고 3년 동안 성을 개축한 뒤 1279년 수도 페레르모에서 이곳으로 왕궁을 옮겼다. 4개의 원통형 성탑이 있는 프랑스 양식의 카스텔 누오보성은 카를로스 1세가 성을 개축할 때 오른쪽 두 개의 성탑 사이의 성벽을 헐어내고 개선문을 만들었는데, 다른 성 문루와 달리 흰색 대리석으로 설치해서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

누오보성은 2차 대전 때 크게 파괴된 것을 복구하여 현재는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성벽은 포탄을 맞은 탄흔 자국이 무수하여 고난의 역사를 말해준다. 성안에는 팔라티노 예배당(Palatina)과 바로나의 방(Sala dei Baron)이 있지만, 옥상에서 멀리 펼쳐지는 나폴리 항을 조망하는 데 일품이다. 성의 광장에는 잔디를 심어서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
나폴리의 구도심 중앙의 단테 광장에서 나폴리고고학박물관까지는 걸어서 약 20분쯤 걸리는데, 이곳에는 중고 서점이 많아서 고서적이나 때때로 진귀한 화집도 구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도시건 지방의 공공박물관은 그 도시 인근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지만, 1885년에 개관한 나폴리고고학박물관은 이탈리아의 국립박물관 중에서도 고고학 유물로 유명하다.
캄파니아 주도인 나폴리의 고고학박물관에서는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20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있던 도시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은 물론 지중해의 중심도시로서 교역했던 고대 이집트·그리스·로마와 팔라티노 언덕에서 출토된 유물과 조각·모자이크·프레스코화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집트전시관은 지하층에 있다.(자세히는 2023. 3. 29. 폼페이 참조) 고고학박물관도 아르테 카드가 있다면 무료입장 할 수 있다.
또 나폴리항 왼편의 해안가에 있는 델로보성(Castle dell'Ovo)은 12세기 노르만 왕이 무역선으로 실어 온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이자 범죄자들을 가뒀던 감옥이었다. 성이라기보다는 요새 같은 느낌인데, 성을 만들 때 비밀장소에 숨겨둔 달걀이 깨지면 나폴리도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서 ‘달걀 성’이라고도 부른다. 델로보성은 입장료가 무료이고, 해안가에 위치하여 망루에 올라가 멀리 베수비오 화산과 소렌토. 나폴리를 조망하는 풍경이 절경이다. 관광객들은 지하감옥도 즐겨 찾는다. 그 밖에 구시가지에는 성(聖) 토마스 아퀴나스가 공부하고 후세를 가르쳤던 도미니쿠스회 수도원과 1224년에 세워진 나폴리대학교가 있는데, 특히 1537년에 문을 연 국립 역사학연구소 음악학교는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원이다. 산 카를로 극장(1737)은 이탈리아 최대의 오페라 하우스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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