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대전현충원. 사진=이준섭 기자

국립묘지는 권력과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쉽게 안장될 수 없는 곳이다. 목숨을 건 희생을 했고 대대손손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안장되는 곳이 국립묘지라고 국민은 믿는다. 그러나 그곳 어딘가엔 역사의 상흔이 그대로다. 우리가 반드시 국립대전현충원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야 하는 이유다.

 

친일파 강제이장 근거없이 58년 
국회 법안 발의 이어지고 있지만 
본회의 문턱 못넘고 폐기 악순환

매해 현충일이면 국립묘지로 시선이 쏠린다. 독립운동가는 맘 편히 잠들지 못하고 친일파는 편하게 잠든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국가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 등재 친일파 중 63명이 서울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중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인물은 11명인데 김석범(만주군 상위·간도특설대 정보반 주임)·백홍석(신의주지구 방공사령관·평북방공위원회 위원)·송석하(만주군 상위·간도특설대 중대장)·신현준(만주군 상위·간도특설대 창설기간 장교)은 대전현충원에, 김백일(만주군 상위)·김홍준(만주군 상위·간도특설대 근무)·신응균(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일본군 소좌)·신태영(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일본군 중좌)·이응준(일본군 대좌·시베리아 간섭전쟁 참전)·이종찬(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일본군 공병소좌)·백낙준(연희전문학교 교수·기독교신문 이사 겸 편집위원)은 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됐고 국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인정한, 부정할 수 없는 친일파들이다.

이들은 왜 아직까지도 현충원에 남아있을까. 우리나라 국립묘지 출발 자체가 독립운동가 등 애국지사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던 탓이 크다. 국립묘지는 한국전쟁 이후 전사자 안장을 위해 국군묘지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5년 오늘날의 국립묘지로 변경됐는데 이때 군인에 대해선 친일에 따른 예외규정을 따로 두지 않았다. 군에서 세운 공적만 적합하면 친일파도 안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국립묘지에 있어선 안 될 인물을 친일행위를 들어 파묘할 법적 근거는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현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국립묘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이장을 강제하는 입법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매번 빈 수레만 요란하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법안 발의는 이어지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 안장까지 최소 10년이 필요할 정도로 사회적 논의와 평가의 시간을 통한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 최초로 안장됐다가 훗날 루이 16세 부부와 은밀한 결탁 사실이 밝혀져 이장된 미라보, 스페인이 과거사청산법을 개정해 30여 년 철권통치를 펼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는 등 국가 관리 묘역에서 논란 있는 인사를 과감히 청산하는 해외와 대조적이다.

결국 올해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지부진한 국립묘지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뜻 모으기에 나선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역위원회는 제68회 현충일인 오는 6일 오전 9시 대전현충원 앞에서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반민족·반민주행위자 등의 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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