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의 하이라이트 계절은 가을이다. 공식 이름 ‘흥진마을 갈대·억새 힐링숲길’에서 알 수 있듯 가을의 풍성한 갈대와 억새가 시그니처다.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의 초입인 이 길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명소와 아주 가까이 있다. 대청호 벚꽃의 대표명소인 오동선 벚꽃길과 바로 이어진다. 오동선 벚꽃길은 알지만 흥진마을 둘레길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요즘은 흥진마을길도 많이 알려져서 사계절 산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흥진마을 둘레길의 여름은 어떨까, 시내버스(63번) 타고 대전 동구 신상동 바깥아감 마을로 향한다.

#1. 62번, 63번 버스
흥진마을 둘레길로 가려면 자가용은 오동선 벚꽃길 시작점인 벚꽃한터에 주차하면 편하다. 시내버스도 62, 63번 초록버스가 두 대나 있어서 버스시간만 잘 맞추면 수월하게 갈 수 있다. 판암역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바깥아감 정류장에 다다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초록의 여름이 마중 나와 있다. 봄에 화려한 벚꽃이 지배했던 벚꽃한터 앞길에 초록바람이 지나고 있다. 초입, 공사가 한창인 곳이 있다. ‘신상지구 수변생태벨트 조성 시범사업’ 현장이다. 6만 1000㎡ 규모 축구장 9개 정도의 크기로 대청호 수질개선과 생태건강성을 높이고 대청호오백리길과 연결, 생태탐방과 교육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곳이 벚꽃시즌뿐만 아니라 사계절 인기 힐링공간이 된다는 의미다. 오동선벚꽃길+수변생태벨트+흥진마을둘레길이 4구간 명상정원 못지않은 사계절 명소가 될 것이다.

#2. 발길마다 포토존
오동선 벚꽃길 인근의 오리요리전문식당 앞을 지나면 흥진마을 둘레길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아,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의 시작점은 반대 신상교 쪽이다.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간다. 새 노랫소리 계속되는 호젓한 오솔길. 계절은 계절이다, 온통 녹색이 지배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미다 포토존이다. 걷다가, 오른쪽을 보면 넓은 초지 뒤에서 백골산이 손짓한다. 예전에 왔을 땐 물이 그득했던 곳이 초지로 바뀌어 있었다. 휴대전화 카메라 속에선 초지마저 아름다운 풍경이다. 물이 많이 빠져 낯선 뭍 풍경을 보여주는 곳에서 잠시 머문다. ‘대청호가 생기기 전엔 이곳도 어느 마을이었겠지.’ 이 마을 사람들이 살던 모습들이 흑백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몰지 집터를 스쳐 지나간다. 곧 오른편 토끼 등처럼 생긴 토끼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토끼봉을 지나면 호수가 제대로 열리면서 이 길의 여름 뷰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3. 어느 젊은 시인은
이 길의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호수에 풍경을 풀었다/지상의 시간이 수면을 타고 번진다. 차분하고 고요하다/호숫가를 걷는다. 빈손을 움켜잡는다/여과되지 않은 기억들 바람으로 치환된다… (김미진 詩 환절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망 포인트다. 호수풍경을 풀어놓은 벤치에 슬그머니 앉는다. 일단 물 한 잔. 오래 걷진 않았지만 습관처럼 물 한 모금. ‘흐리고 비’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하늘이 파랗다. 구름마저 예술이다. 벤치 앞에서 호수의 속살 같은 뷰를 휴대폰에 담는다.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되는 뷰. 서해 어느 섬에 온 듯하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물가 쪽으로 내려간다. 프레임 속으로 직접 들어왔다. 다양한 포즈를 시도해보지만, 역시나다. 어색한 표정 지으며 호숫가를 걷는다. 조금 덥긴 하지만 호수가 주는 휴식이 더 크다. 모퉁이를 돌면 대청호의 장엄이 밀려온다. 바닷가에 온 것처럼 물결 일렁이고 때론 파도처럼 밀려온다. 윤슬은 눈부시게 유혹한다. 층층 물과 뭍의 경계를 걷는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4. 호수 건너편엔
멀리 계족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황새바위전망대 데크가 아주 가까이 보이고 그 옆으로 거북바위가 보인다. 물가를 걷고 있는데 뒤쪽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중년 여성 네 분이 다가왔다. 곧바로 감탄사가 이어진다. “좋다, 좋아. 너무 평화롭네~~~.” “이런 게 힐링이지.”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목소리, 행복바이러스가 번진다. 잠시 숲길로 올라간다. 이 길의 공식경로는 물가 길이 아니고 벤치가 있는 숲길이다. 나무와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대청호 풍경도 예술작품이다. 수채화 같은 프레임 속에 초록빛 물결이 압권이다. 물가에서 혼자 걷고 있는 여성이 프레임에 들어온다. 맨발이다. 맨발로 제대로 대청호를 즐기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오픈조망이다. 신상교와 식장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온다. 3㎞ 남짓 둘레길이 벌써 끝나간다. 신상교를 향해 걷는 걸음, 이곳도 초지 파노라마다. 커다란 민물조개 껍데기가 계속 발 주위에 머문다.

#5. 신상교 앞
공식적인 흥진마을 둘레길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과 5구간을 잇는 둑방길을 빼놓을 수 없다. 대청호 수위가 높을 땐 물에 잠겨 볼 수 없는 길이다. 신상교 아래 앞을 지나 둑방길에 섰다. 수위가 너무 낮아져 둑방길 왼쪽은 대부분 초지다. 오른쪽도 상당 부분 물이 없다. 아쉽다. 양쪽으로 물이 그득한 둑방길이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쉬운 대로 둑방길을 걷다가 3분의 2 지점에서 돌아나온다. 물새들이 착륙과 이륙을 반복한다. 새들의 물 위 슬라이딩 착륙과 타다다닥 스타트 이륙은 언제 봐도 걸작이다. 신상교 위 근처로 올라가 대청호와 둑방길을 바라본다. 4구간 주산동으로 이어진 둑방길과 신상인공습지로 가는 왼쪽 길과 5구간 흥진마을 시작점을 잇는 오른쪽 길이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나는 세 갈래 방향이 아닌, 신상교 아래를 통과해 오리골로 향한다. 곧 오리골에 도착하는 63번 버스를 타러 간다. 차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