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13일부터 나흘째 쏟아진 폭우로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 제방 붕괴, 지하차도 침수 등이 잇따르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끝이 아니라 더 두렵다. 앞으로 어디서 얼마나 집중 호우가 허를 찌르며 연약한 기반을 속절없이 무너뜨릴지 미궁의 재난 상황이다. 선제적으로 손 쓸 방도가 없는 지금은 재난 컨트롤 타워를 믿고 국민 개개인이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만이 피해를 최소화할 길이다.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집중 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50명에 육박한다. 사망자 33명, 실종자 10명, 부상자 22명으로 잠정 집계됐는데 안타깝게도 중대본 발표 직후 충북 오송 지하차도에서 시신 1구가 추가 인양되고 경북 지역에서 호우 피해 사망자가 1명 늘었다. 특히 현재까지 9명이 숨진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의 경우 각 차량 탑승자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희생자가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장맛비는 경북과 함께 충청권에 큰 피해를 안겼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변을 비롯해 14일과 15일 논산과 청양, 세종에서 산사태로 4명이 숨지고 공주와 아산에선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각각 1명이 숨졌다는 비보가 타전됐다. 논산과 청양에선 제방이 무너져 주민 수백 명이 긴급 대피했고 공주와 부여는 곳곳이 침수돼 망연자실이다. 세종과 대전에서도 침수나 산사태 위험으로 주민들이 사전 대피했다.
농경지 침수와 도로 유실 등의 피해도 상당한데 현재로선 집계가 무의미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18일까지 충청·전라·경상에 최대 300㎜ 이상 비가 예보됐다. 22∼24일엔 전국에 비가, 25∼26일에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또다시 비가 내릴 전망이라니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올 장마가 시작한 뒤 단 20일 만에 평년 장마철 강수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집중 호우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를 사전에 예상된 슈퍼 엘리뇨 영향으로 받아들이면 섬찟해진다. 장마로 둔갑한 수마(水魔)가 기후변화의 역습이라면 우리가 오늘 겪고 있는 수난(水難)은 천재지변이 아닌 책임을 특정할 수 없는 인재다. 역대 최장(54일) 장마를 기록하며 50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무정한 여름이 불과 3년 전이다.
장마 피해 현장 어딘가엔 특정할 수 있는 인재의 흔적이 드러날지 모른다.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참 많은 사후약방문을 봐 왔다. 그것은 차후에 따질 일이고 지금은 지속되는 폭우 속에 추가적인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총력 경주해야 한다. 나흘간 벌어진 피해 패턴은 방지의 본보기다.
